20대 초반의 나에게 ‘20 년 후’는 가늠하기 어려운 먼 훗날이었다.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과 20 년 후에 다니던 학교 정문에서 만나기로 했다. 분명 20년 후 모월 모일이라고 못 박았지만 그날은 우리들에게 여전히 너무 먼 ‘언젠가’였다. 그만큼 비현실적이었다. 그건 정말 약속이었을까? 그냥 농담이었을까?
그 약속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던 건 아니었지만 정작 20년이 다 되어 약속 날짜가 다가오자 나는 조금씩 가슴이 두근거렸다. 기대 반 불안함 반으로 기분이 복잡했다. 막연히 어떤 연락도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나도 하지 않았다. 20 년 전에 함께 뭉쳐 다니던 그 친구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허공에 떠있는 듯 현실감이 사라진 며칠을 보내고 나니 마치 긴 여행에서 돌아온 듯 주변이 달라 보였다. 나를 둘러싼 시공간이 다시 편안하게 느껴지기까지는 며칠이 걸렸다. 실제 친구들을 만난 것도 아니고 단지 약속을 떠올렸을 뿐이었는데도 그랬다.
무리의 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온 건 20년 후의 그날로부터도 몇 년이 지난 후였다. 며칠 후 우리는 만났다. 기억 속의 그 친구는 키가 작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다부진 몸매였다. 시위를 할 때마다 빠지지 않았고 노래를 부를 때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서 듣는 이들은 기가 질리곤 했다. 맥주를 마시는 아이들을 싫어했지만 정작 맥주를 좋아했던 그 친구는 종종 집에 가지 않고 학생회관 동아리 방에서 잠을 잤는데 지금은 무역업을 한다고 했다. 졸업하자마자 유학을 갔고 그대로 눌러앉아서 살게 되었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 그 애가 즐겨 이야기했던 삶은 그게 아니었다. 왜 그랬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헤어질 때 내가 오래 전의 그 약속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그때 그게 약속이었느냐고. 웃음이 대답이었다. 세월이 지났어도 웃음은 그대로였다. 나도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댈러웨이 부인]에서 클라리사의 파티에 온 옛 친구들도 그랬을까. 30년 전의 젊은이들은 이제 누구도 백 퍼센트 옳거나 그르다고 말하지 않을 만큼 나이가 들었다. 사유재산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며 열을 올리던 샐리는 성공한 사업가와 결혼했고, 자신을 잃지 말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열을 올리던 피터는 낙오자가 되어 돌아왔으며 클라리사는 피터가 놀렸던 대로 안주인이 되어 계단 위에 서게 되었다. 다행스러운 건 생각했던 것과 동떨어진 모습으로 살고 있으면서도 되돌아가거나 다른 곳을 바라보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피터는 클라리사를 바라보면서 그녀가 삶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모든 삶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그녀에게 경탄하는 장면에서 매번 안도한다. 그게 바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재능이 아닐까.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사랑할 수 있는 자유, 길의 끝에 죽음이 기다리는 걸 알면서도 영원히 살 것처럼 최선을 다하는 재능. 나도 가지고 있을까?
옛 친구들을 만나면 신기하다. 변한 줄 알았던 친구들이 예전 그대로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즐겁다. 친구들은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더 자기다워진다. 그런 자신을 드러내는 것도 더 이상 겁내지 않는다. 파티가 끝나갈 무렵 피터와 샐리가 나누는 대화는 나와 내 친구들이 나누는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젊을 때는 너무 흥분해 있어서 사람들을 알지 못하다가 이제 성숙해지고 보니 이해할 수 있다고, 느끼는 힘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해마다 훨씬 더 깊고 더 열정적이 된다'는 것이다.
"그 나이에도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살아보면 저절로 알게 된답니다."
그러니 그대 오늘을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