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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Sep 15. 2024

나홀로 프로젝트- 한 달 쓰기

[내 마음대로]는 오늘이 마지막입니니다.

  8월 16일부터 브런치에 매일 글을 썼다. 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짧거나, 입안에서 우물거리듯 모호하거나, 지나치게 사적인 끄적임 들도 있었다. 한 달 전에 에밀리 디킨슨의 기사를 읽다가 무엇인가에 홀린 듯 쓰기 시작했고 오늘로 꼭 한 달이 되었다. 일기도 있었고, 초고를 다듬어 발행한 글도 있었다. 매거진 [내 마음대로]가 대부분이었으나 [버지니아 울프를 좋아하세요]에 속한 글도 있었다. 지금 쓰고 있는 글까지 31편, 한 달이 지났다.


  몇 년 전에 일 년 동안 매일 글을 쓴 적이 있다. 첫 책 [안녕하세요]를 출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재미 삼아 시작했다가 빠져들었고 끝내지 못할까 겁을 냈고 마쳤을 때는 안도했다. 글을 가지고 약속을 해서는 안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내 안에 이야기가 넘쳐흐를 때 쓰겠다든지, 무슨 일이 있어도 일주일에 한 편 혹은 매일 한 편 쓰겠다든지 하는 말들은 족쇄인 동시에 면죄부라는 걸, 글에 관해서라면 그런 건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았던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글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글을 한 달 동안이나 매일 썼을까.


  에밀리 디킨슨이 '나는 나를 찾고 있어'라고 말했다는 것, 클라리시 리스팩토르가 '내가 나였다면'으로 시작하는 일련의 문장들을 한 편의 시처럼 늘어놓았다는 것, 버지니아 울프가 '무엇보다 자신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했다는 것 등등을 읽을 때마다 몸이 움찔거리는 건 분명 사실이다. 그런 한 편 여전히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디로 향하고 싶은지 명확히 알고 있지 못하며, 인쇄된 글자들 뿐만 아니라 백지인 공책과 연필을 좋아한다는 정도 외에는 스스로에 대해 할 말이 거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진지한 독서가도 아니고 잘 읽히는 글을 쓱쓱 쓰지도 못하면서 이곳에서 떠나지 못하는 내가 어이가 없어서 그래? 그렇다면 어디 한 번 매일 써보렴, 했던 것이다. 끝을 정하지는 않았다. 며칠이나 갈까? 내가 나를 비웃으면서 시작했던 8월 16일.


  3 주 정도 지났을 때 고무줄이 탁, 끊어지는 느낌이 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니 안 한다고 뭐랄 이도 없을 텐데 밤마다 시계가 열두 시를 치기 전에 노트북 앞에 앉아있는 자신을 놓아 줄 때가 왔다고 느껴졌다. 잘하지는 못해도 좋아하는 게 확실하긴 했다. 글자, 단어, 문장부호, 이야기, 읽고 쓰기. 그렇다면 가고 싶은 곳이나 되고 싶은 사람도 그 언저리일 것이었다. 어쩌면 그걸 알아차리기 위해 이런 수고를 할 필요 같은 건 애초에 없었을지도 몰랐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래왔음에도 모른 척, 안 그런 척했을 뿐인지도.  이미 알고 있는 걸 다시 확인하기 위해 '소나기를 맞고 잠에서 깨어나는' 일이 필요했다고 하면 지난 한 달 동안 썼던 글을 읽어주고 댓글을 남겨준 이들은 바로 에밀리 디킨슨이 들고 있던 등불일지도 몰랐다.


  잘하지 못해도 좋아하는 걸 할 것이다. 늦더라도 내가 있고 싶은 곳에 나를 데려다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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