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읽고 나면 말이 없어진다. 여름에서 가을로 건너가는 아침에 종종 내려앉는 안개에 갇힌 것처럼 사방이 뿌옇게 흐려져서 아무것도 지각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한참 동안 제 자리에서 그 적막을 견뎌내야 한다. 그러다가 외출을 하거나 식사준비를 해야 하거나 해서 어쩔 수없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해도 몸만 움직일 뿐이다. 정신은 여전히 무엇엔가 붙들려 있는 것이다.
스가 아쓰코의 [트리에스테의 언덕길]도 그렇다. 그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말문이 막히고 귀가 먹고 몸이 굳었다. 스가 아쓰코가 어떤 인물을 이야기할 때는 한 세계가 불려 나온다. 그가 다루는 인물들은 각자 자신의 세계에서 주인공이다. 그의 책에서 인물들은 한없이 유연하고 강하다. 스틸로 만든 스프링 같달까. 단단한 땅 위를 흔들림 없이 걷는 인물들은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 나 같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을 어떤 기준, 명확하고 굳건한 자신만의 그것을 가지고 살아가므로 누구든 그들을 판단할 수 없다. 설사 그 세계를 직접 만들어낸 작가라 할지라도 말이다. 스가 아쓰코의 글이 가진 힘이다.
그의 다른 산문집들과 마찬가지로 [트리에스테의 언덕길] 역시 사람들이 중심에 놓여있다. 철도원이었던 시아버지, 그를 신뢰했던 창부들, 미혼모 마리아, 수다쟁이 수도사, 머리가 나쁘고 품행이 좋지 못하지만 꽃과 새를 사랑하는 꽃장수, 거친 산 사나이 같은, 몸속 깊이 가난이 배어든, 팍팍한 삶으로 지칠 만도 한 사람들에게서 품위가 느껴진다. 스가 아쓰코가 그들 각자의 세계를 온전한 것으로 만들어놓고 스스로 그것을 존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새 책을 읽을 때마다 이미 읽은 그의 책들을 다시 읽는다. 글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을 잡아채고 싶어서다. 흉내라도 내고 싶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의 글을 읽고 나서도 더 이상 말문이 막히지 않고 멍해지지도 않는 때가 올까? 온화함과 품위의 세계, 뼈만 남았을지라도 숨길 수 없는 아름다움, 좀처럼 꺾이지 않는 부드러운 용기를 나도 가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