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은 멀리서도 보인다. 동화 같은 색으로 말간 얼굴을 물들이고 있는 수국관목 앞으로 다가가서 몸을 숙이는 건 더 가까이 보고 싶은 마음인데 아! 그쯤에서 터져 나오는 탄식. 꽃에 이끌렸다고 생각했는데 꽃 안에 꽃이 하나 더 있다. 나를 현혹시켰던, 그러니까 내가 꽃이라 여겼던 건 사실 꽃이 아니라 꽃받침이란다. 꽃받침은 다양하기도 화려하기도 해서 갖가지 모양을 하고서는 자기주장을 하지만 꽃은 아니다. 꽃은 가능한 작게, 단순하게, 고요하게 중심을 향하면서 거기 그대로 그냥 있다.
동선, 이연의 [영화처럼 산다면야]도 그렇다. 영화라는 단어를 제목에 품었다. 글 한 꼭지마다 한 편의 영화제목이 나란히 붙어있다. 읽다 보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이 수국 작은 꽃처럼 숨어있다. 그걸 살피느라 빨리 나아가지 못한다. 가끔은 그 작은 꽃의 꽃술에 발이 엉켜 넘어지기도 한다.
기억이란 게 어디 좋은 것만 있을까. 그리 살아온 게 징그러워서 고개를 외로 꼬고 못 본 척을 하기도 여러 번, 이제는 멀리 왔거니 마음 놓고 있다가 덜커덕 잡혀버린 꼴이다. 속수무책 도망도 못 가고 엉거주춤 옷자락을 움켜쥔 채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읽어 내려갈 밖에. 그러다가 한 순간 내가 화해했음을 알게 되는 신기한 경험.
다정하고 친절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욕심도 없고 냉소적이지도 않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책을 썼을까 하다가 아, 이 사람들 똑같네 하고 만다. 살아간다는 게 어떤 거라는 걸, 아름다움이 곧 슬픔이라는 걸, 끝이 바로 시작이라는 걸, 오늘이 바로 삶의 전부라는 걸, 죽음이 삶과 다르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구나 싶은. 그러니까 만나본 걱도 없는 그들과 책 속에서 한바탕 어울려 뒹군 느낌.
올해는 유난히 수국이 곱다. 그리고 많다. 오래도 피어있다. 장마가 길다고 했다. 여름이 끝나면 말도 많겠다. 하지가 지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