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바라보는 일

by 라문숙


전동차의 문이 열리고 한 중년여자가 들어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여자에게로 쏠렸다. 그녀가 자신보다 큰 나무를 끌고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나무는 커다란 고무 양동이에 담겨 있었는데 잎은 없고 위로 뻗은 가지 몇 개가 전부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초로의 여자는 누군가 자리를 양보하자 마다하지 않고 앉아서 양동이를 당겨 가까이 놓고 나무를 살피기 시작했다. 나무가 기울어지지는 않았는지 가지가 휜 곳은 없는지 보려는 것 같았다. 전동차 천장에 달려있는 손잡이들이 나뭇가지를 건드리는 걸 발견하고는 비닐에 싸인 나무 밑동을 끌어안다시피 한 채 손잡이에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겨놓느라 부산을 떨었다.


마침내 일을 마친 여자가 비로소 자신을 향한 시선을 의식한 듯 사방을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살구나무예요” 곧이어 나란히 앉은 이들과 살구나무를 어디에서 가져오는 중인지 어디에 심고 어떻게 돌봐줄 것인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나 역시 나무를 무릎 앞에 바짝 붙여놓고 앉아있는 여자에게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오고 가는 말들을 온전히 들을 수는 없었지만 이따금 들려오는 살구나무, 흙, 바람, 햇빛 같은 단어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거려지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즈음 나무에 빠져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게도 살구나무가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조금 돌리면 창밖으로 살구나무가 보인다.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해 엉성하고 어설픈, 사람으로 치면 청소년기를 지나는 정도의 어리고 작은 나무다. 야트막한 숲과 집 사이, 늦은 오후까지 해가 지나는 길목에 산다. 사람 사는 마을에 빗대면 작은 골목길이라고 할까. 맑은 날이면 햇살이 고여 빛이 찰랑거리는 작은 우물 같은 곳이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릴 때마다 온몸으로 빛의 세례를 받고 있는 작은 나무에 눈이 부시다. 빛이 지나가는 길은 바람도 지난다. 살구나무는 다른 나무들보다 작아서 약한 바람에도 가지를 흔들며 춤을 추지만 주변의 키 큰 나무들은 마치 어른이 발치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이파리만 살랑거릴 뿐 조용하다.


어느 봄날 아침에 우연히 햇살이 살구나무 잎에 가닿는 모습을 목격했다. 충격을 받았다고 하면 과장일까. 날카롭고 뜨거운 것이 내 몸을 빠르게 통과해 버린 것 같아 한동안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무성한 밤나무 가지 사이를 뚫고 들어온 태양빛이 살구나무 잎사귀에 닿자 순식간에 바뀌던 창밖풍경은 경이로웠다. 표정이라곤 없던 초록색 잎사귀가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짝이는 노란빛을 띤 연두색으로 변한 것이다. 햇살은 얇은 잎을 뚫고 그대로 나아가 주변을 투명하게 만들었다. 미세한 바람에 나뭇잎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새가 울자 고요한 아침 숲의 나무들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무심히 창가에 기대 숲을 바라보던 나는 그만 압도되었다. 살구나무는 더 이상 책상 앞에 앉아 이따금 바라보던 나무가 아니었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그 방에 들어가 의자에 등을 기대고 빛나는 나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유독 살구나무만 빛이 나는 이유가 궁금했다. 해가 뜨기 전이나 흐린 날에 살구나무는 주변의 밤나무나 벚나무, 참나무들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나무들에 비해 나의 살구나무는 키도 작고 체구도 왜소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작은 나무에 햇빛이 닿기만 하면 순식간에 숲의 풍경이 바뀌고 마는 것이었다. 살구나무가 빛날수록 주변의 나무들은 어둠 속으로 물러났다. 우람한 나무들의 우듬지에 내려앉은 빛은 그늘을 만들었고 그늘은 살구나무에 내려앉은 빛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아침햇살 속에서 빛나는 작은 살구나무 한 그루가 숲 전체를 아름답게 했던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처럼 살구나무가 특별해 보였던 건 다른 나무들이 어두운 그늘 속에서 침묵했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되었을 때 살구나무에 대한 감탄은 그늘 아래 선 나무들을 향한 경외감으로 바뀌었다. 모든 나무들이 살구나무의 빛나는 순간을 위해 숨을 죽였다. 그 순간은 살구나무의 것이었고 이웃 나무들은 작은 나무가 쌓아온 시간들을 존중했다.


나무가 처음부터 그곳에 살았던 건 아니었다. 고백하자면 지금의 살구나무는 욕심 많은 초보 정원사가 저지른 수많은 실수 중 하나였다. 다른 묘목들과 너무 붙여 심은 탓에 제대로 자라지 못했고 그걸 보다 못해 택한 방법이 바로 옮겨심기였다. 처음 나무를 옮길 때의 마음이야 넓은 곳에서 마음껏 살아보라는 것이었지만 실제 밖으로 밀려난 작은 나무를 제대로 돌보았다고 할 수는 없다. 거의 잊히다시피 한 살구나무가 다시 눈에 들어온 건 두어 해전부터였는데 바로 이른 봄 잎도 없는 가지에 하얀 꽃이 피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잊고 있던 동안에도 살구나무는 묵묵히 자신의 시간을 살았고 나로 하여금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다.


창문 안에서 바라보는 나무의 시간은 타자의 시간이었다. 나무들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저만의 시간을 건넜다. 숲은 수많은 시간들이 교차하는 곳이라 지켜볼수록 더 많은 것들이 보였다. 무엇보다 나라는 감각, 느리게 흘러가는 기다림의 시간이 그지없이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시든 꽃잎을 줍고 부러진 가지들을 치우면서 새로운 계절을 기다렸다. 이번겨울만 해도 봄은 얼마나 멀리 있는가. 눈이 어는 밤이면 봄은 불가능의 영토로 물러난다. 그러므로 한겨울에 봄을 기다리는 건 꿈을 꾸는 것과 같다. 바로 그것이 나무가 하는 일임을 나는 이제 안다. 봄이 올 것을 알고 있으므로 낙담하지 않는다. 기다리고 꿈꾸는 것이 나무를 지켜보는 이의 방식이라는 걸 나는 그 나무에게서 배웠다. 전철 안의 그녀가 다시 생각난다. 그가 그토록 힘으로 넘쳤던 건 앞으로 나무와 함께 살아낼, 각자의 속도로 쌓아가는, 꿈꾸며 기대하는 시간의 힘을 예감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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