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양곤 여행4] 뜨거운 연인과 황활한 석양...삶은 여행이다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다.
캄캄한 방안에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휴대폰과 카메라, 지도...어둠 속에서 몇 번이나 소지품을 확인했다. 기록하고 싶은 게 많으면 이것저것 챙기게 된다. 시계를 봤다. 새벽 4시 30분. 아직 늦지 않았다.
아침 댓바람부터 호들갑을 떨었다. ‘탓발(托鉢)’ 때문이다. 오래 전, 사진 한 장에 마음을 빼앗겼다. 정지된 화면 속에는 길게 늘어선 황토색 승복의 행렬과 길 가에 쪼그려 앉아 시주하는 사람들. 이들을 감싸는 희뿌연 새벽안개가 담겨져 있었다. 사진에 홀딱 반해 한동안 이 장면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까닭 없이 미얀마로 여행 온 게 아니다.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거실 한 귀퉁이에서 게스트하우스 직원이 쪽잠을 자고 있다. 어젯잠 그에게 온 몸을 이용해 짧은 영어로 이렇게 물었다.
“탁발, 왓 타임?”
“탁발?”
“(손을 모으고 고개를 연신 숙이며) 탁발, 탁발”
“아! 탁밧!”
새벽 5시 30분이라 했다. 어딜 가도 ‘탁밧 행렬’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단 두 마디를 알아듣고 무작정 짐을 챙겨 거리로 나왔다.
바깥 세상은 낮고 밤의 경계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양곤의 하늘 위로 옅은 빛이 새어나온다. 당당히 이불을 박차고 나왔으나 막상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새벽 거리서 해코지나 당하지 않을까 걱정스런 마음도 든다. 딱 절반만 용기를 냈다.
“그래, 익숙한 길로 가보자”
거리가 텅 비었다. 동네가 썰렁하다. 정처없이 걷노라니 어디선가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탁발행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발길을 재촉했다. 예상이 빗나갔다. 꽉 막힌 자동자와 짐을 내리는 사람들로 붐비는 도로가 나타났다. 새벽장터였다.
탁발을 까마득히 잊고
새벽시장을 헤맸다.
비릿한 냄새가 풍겼다. 정육점과 수산물가게가 한 데 줄지어 늘어섰다. 고기를 써는 현란한 칼질에 눈이 갔다. 파리를 내쫓는 한가로운 손짓에 눈이 머물렀다. 한국과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미얀마 시장, 비슷한 풍경이지만 모든 게 신기하다.
입이 ‘떡’ 벌어졌다. 거리에 사람들이 꽉 찼다. 머리에 짐을 얹고 가는 이, 손수레 끌며, 소리를 치는 이, 좌편을 펴놓고 손님을 찾는 이...도떼기시장이다. 한국의 시골장터 분위기도 난다. 카메라를 들어 오가는 이들을 담았다. 꿈틀거리는 현장을 기록하는 카메라 셔터소리가 찰지다. 탁발행렬은 못 만났지만 아쉽지 않다. 양곤 사람들의 진짜 삶을 들여다본 기분이 든다. 이제부턴 탁발이 아니라 새벽시장의 풍경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 같다.
퀴즈하나.
미얀마 연인들의 필수품은 무엇일까?
뜻밖이겠지만 답은 우산이다.
낮잠을 자고 느지막이 숙소를 나왔다. 2월 양곤은 여름이었다. 더위에 숨이 턱턱 막혔다. 대낮에 활동하는 건, 무리였다. 양곤에서 하루 만에 깨달은 생활팁이다. 따가운 햇살은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또, 거리로 나왔다. 목적지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하염없이 걸으며, 양곤시내를 배회했다. 온 몸이 땀에 뒤범벅됐을 때, 공원을 발견했다. 쉐타곤 파고다 앞 공원이었다. 늘어지게 낮잠이나 잘 요령으로 나무 밑 그늘 찾았다. 조용하고 후미진 곳에 적당한 자리가 보였다. 자리를 깔고 누으려는 찰나, 멀지 않은 수풀 틈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보니 젊은 남녀가 우산 하나를 함께 쓰고 앉아 있었다.
햇빛을 가리려 쓴 우산이 아니었다.
우산 아래서 꽁냥꽁냥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과감한 스킨십을 시도하는 연인들도 눈에 띄였다. 결국 우산은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쓴 거였다. 여기만 이런 게 아니었다. 공원 곳곳에 우산을 뒤집어 쓴 연인이 즐비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후미진 곳은 더욱 그랬다. 끝내, 한적한 장소를 구하지 못했다. 오가는 이들로 꽤 시끄러운 나무 밑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양곤 'Theingottara Park'은 젊은 연인들의 연애장소였다.
공원에서 늘어지게 낮잠이나 자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젊은 연인들의 애정행각에 눈꼴이 시려 그런 건 아니다. 해질 무렵 가야할 곳이 있다. 어제 둘러본 장소다. 짐을 꾸려, 다시 거리로 나와 걸었다. 도심의 풍경이 발을 잡아끈다.
양곤강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나루터를 떠난 배가 물살을 일으키며, 저녁노을을 가른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을 돌아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아련하다. ‘황홀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태어난 듯하다.
빨갛게 익은 해가 사라질 때까지 나루터를 떠나지 못했다. 마음이 평온하다. 가이드북을 사오지 않길 잘했다. 여행책자엔 이런 곳이 소개돼 있지 않았다. 관광코스를 벗어나니 새로운 풍경이 보였다.
삶도 이렇다. 남들 다 가는 똑같은 방식으로 살면, 길은 하나다. 하지만 틀을 벗어나면, 수십 수백개의 길이 나타난다. 내가 가는 길이 곧 길이기도 하다. 오늘도 소소한 삶의 방식을 깨닫는다. 삶은 관광이 아니라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