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글라바 미얀마

배낭 메고 떠난 미얀마 여행

by 마당쇠

또, 무작정 떠났다. 여행은 진리니까. 명절을 앞두고 남들은 고향으로 떠날 때, 미얀마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동남아 사람 같다”는 말을 자주 들으니 “귀향”도 틀린 말은 아니다. 지난 2월 4일부터 12일까지 배낭 메고 떠난 미얀마 여행기다.


들어가며

이 글은 불친절하다. 어떤 여행정보도 담고 있지 않다.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낀 나를 위한 기록이다.


“안녕”하고 떠난 여행은 첫날부터 안녕하지 못하다. 하늘을 날아야 할 시간, 땅에서 짜증을 내고 있다. 연착이란다. 징조가 나쁘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노랫말이 현실이 됐다. 지난 4일 8시, 미얀마 양곤공항에 발을 내딛자 핸드폰이 잠들었다. 엎친데 덮친다고 했던가. 숙소 주소마저 잠든 스마트폰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복장은 터지는데 와이파이는 왜 그리 안 터지는지. 정말, 되는 게 없는 하루다.


커피 한잔 값을 휴대폰 충전과 맞바꿨다. 잠든 휴대폰이 깨어났다. 빨간 배터리 표시가 녹색 빛으로 변했다. 불안했던 마음이 편안하다. 이제야 용기가 난다. 말만 촌놈이라 떠들었지 첨단기술의 도움 없이는 잠깐도 불안하다. 문명시대를 사는 촌놈은 진짜 촌놈이 아니다.


“택시? 10달러”


이번에도 미얀마어가 아니다. 아직, 이 나라 말을 듣지 못했다. 미얀마어를 한마디도 모르나 영어로 말을 걸어오는 상황도 낯설다. 사실 영어실력이 형편없다. 쥐약이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9년, 영어를 허투루 배웠다. 낯선 땅에서 늦은 밤, 택시기사의 부름이 반가우나 애써 태연한 척 속마음을 숨긴다. 바가지를 안 쓰려는 나름의 대처다. 최대한 자연스레 그에게 영문으로 된 숙소 주소를 건넨다.


“오케이! 아이 노우 호스텔(OK! I know hostel)"


창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시원하다. 차창밖엔 낡고 허름한 풍경이 스친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은 도시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도로에 쉴 새 없이 경적소리가 울리나 짜증스럽지 않다. 아날로그 감성을 찾아 떠나온 여행, 미얀마에 오길 참 잘했다.


숙소 앞에 택시가 섰다. 이번엔 먼저 영어로 숙소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하이"


여권을 받아든 그가 열쇠를 건넨다. 유창한 영어로 이것저것 설명도 한다. 반은 알아듣고 반은 못 알아들었다. 영어,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숨겨둔 비밀병기를 꺼냈다. 바디랭귀지다. 온 몸으로 이런저런 정보를 캐묻는다. 더디고 답답한 대화, 한국어와 영어, 바디랭귀지가 섞인 비빔밥언어가 탄생했다. 알아듣는 게 용하다. 말이 통한다는 게 언어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곡소리를 내며 침대에 누웠다. 하루 종일 긴장한 탓일까? 피곤하다. 눈을 감았다. 미치도록 피곤한데, 잠이 안 온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정신이 '똘망똘망'하다. 여행 첫날, 심쿵하다. 아침이 밝아오는 속도가 더디고 숙소 와이파이도 거북이다. 어쩜 이리 닮았을까. 새벽녘까지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덥다. 아침인데 한낮 같은 기온이다. 시차는 2시간 30분인데, 계절은 정반대다. 숙소 밖으로 나서자 더운 공기가 숨구멍을 뜨겁게 대핀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천국과 지옥이다. 식전 댓바람부터 이렇게 덥다니, 믿기지 않는다. 아무래도 24시간 에어컨을 켜놓는 숙소가 그리울 듯하다.


강으로 향했다. 구글맵으로 동네를 살피다 찾은 곳이다. 갯가에서 태어나서 일까. 어딜 가든 물가를 찾게 된다. 본능일까? 병일까? 남들은 관광명소로 향할 때, 홀로 배낭을 메고 카메라를 손에 쥔 채 양곤강으로 갔다.


부둣가가 부산스럽다. 머리에 바구니를 이고 걸어가는 아낙네, 어깨에 짐을 멘 머슴아, 어디론가 바삐 자전거 페달을 밟는 인력거, 침샘을 자극하는 좌판, 모여서 수다 떠는 사람들...이역마리 낯선 땅에서 고향마을 바닷가가 떠오른다.


카메라를 들었다. 뱃머리를 부두에 댄 선박에서 하역작업이 한창이다. 물건을 나르는 인부들이 바쁘다. 사각프레임에 그들을 담는다. 검게 그을린 어깨 위 하얀 포대가 피를 더 까맣게 비춘다. 꽁야(씹는담배) 판매대도 보인다. 기나긴 노동이 끝나면,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꽁야를 씹겠지. 아름다운 상상을 머리 속에 그린다.


사람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뒤꽁무니 쪼르르 따라갔다. 작은 배들이 와글와글하다. 강 건너 마을에서 사람들을 나르는 배다. 계단에 쪼그려 앉아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여행책자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장면이다. 파워블로거도 안 알려주는 풍경이다. 오직 나만 보는 그림.


나만의 단독, 나만의 특종이다.

사람들을 쫓아갔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고 뒤를 밟았다. 4차로 앞, 차선이 없다. "쌩쌩" 달리는 차를 요리조리 피해 길을 건너간다. 다시 또, 도로. 사람보다 차가 많다. 버스와 승합차, 택시, 자가용이 얽히고설켜 있다. 서울의 교통체증은 이곳에 비하면 양반이다.


여기저기서 경적소리가 요란하다. 낡은 승합차와 버스가 정지할때마다 차장이 문에 서서 소리를 지른다. 행선지를 말하는 듯싶다. 사람들이 차에 우르르 타고, 우르르 내린다. 차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태종대~당감주공'. 여기는 한국이 아니다. 미얀마다. 88번 천연가스버스가 달려야 할 도로가 아니다. 뉴스로 보고 듣던 이야기가 눈앞에 펼쳐진다. '안전운행'을 끝낸 버스는 은퇴 후 미얀마로 건너와 있었다.


도떼기시장 같은 도로를 건너 골목길 앞에 섰다. 페인트가 다 벗겨지고 거무튀튀한 골격을 드러낸 빌라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집집마다 둥근 수신기가 달려있다. 혼잡한 도로를 닮은 길이다. 이 길의 끝은 어떤 얼굴일까. 카메라를 다시 고쳐 메고 앞을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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