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양곤의 거리는 낡았다. 벗겨지고 부서진 건물이 차고 넘친다. 어느 순간 닳고 닳은 건물이 맥없이 허물어질 듯하다. 그 아래를 걷노라니 머리 위가 아찔하다. 뭔가 떨어질 듯하다. 이렇게 낡은 건물에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니 놀랐다.
차이나타운. 숙소 직원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핫플레이스다. 숙소와는 불과 10분 거리. 골목길 몇 개 사이로 딴 세상이다. 사람과 차가 뒤엉켜 난장판이다. ‘EBS세계테마여행 미얀마편’에선 못 봤던 장면이다. 케마라 앵글 밖 세상이 더 볼만하다.
도로 위가 아수라장이다. ‘멀쩡한 차’와 ‘한물간 차’가 경적소리를 내며, 거리에 뒤엉켜 있다. 낡은 버스와 봉고차엔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굴러가는 게 신기한 차에도 마찬가지. 오토바이떼를 상상했는데 착각이었다. 서울의 교통체증은 “저리 가라”할 정도로 온통 “차차차”다.
도로와 건물 사이는 좌판 차지다. 심심한 입을 달래줄 군것질거리, 허기를 달래줄 요깃거리, 색색의 과일과 채소, 휴대폰케이스, 선글라스, 손톱깎이, 각종공구...있어야 할 것은 다 있고, 없을 것 없는 화개장터다. 발걸이 더뎌진다.
양곤의 거리는 자유롭고 자유롭다. 노촌카페에선 차를 마시는 사람. 거리뷔페에 앉아 허기를 달래는 사람. 공터서 세팍타크로를 하는 남자애들. 저마다 하고 싶은 데로다. 문명과 담 쌓고 살지도 않는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고 페이스북을 하거나 SNS로 문자를 주고받는다. 자유로이 아무데서나 담배도 핀다.(흡연자의 눈에는 이게 가장 부럽다)
뭘 몰랐다. 미얀마를 떠올리면 ‘군부독재’란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일까. 거리엔 군인들이 즐비하고 도시는 딱딱한 분위기일줄 알았다. 생각이 짧았다. 그래, 잊고 있었다. 뉴스는 편집된 세상만 보여준다는 것을. 양곤 거리 어디에도 군인은 없다.
카메라를 들었다. ‘아웅산 수지의 총선 승리’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거리를 담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자유롭게 노닐었던 모습이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행동에서 그렇게 읽힌다. 군부독재도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통제하지 못한 것일까? 그래, 시대의 흐름은 총칼로 거스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쉼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오가는 이들을 담고 있노라니 한국의 민주화 역사가 떠올랐다. 별꼴이다. 여행까지 와서 이런 생각을 하다니.
불교의 나라. 미얀마를 설명하는 문구다. 술레파고다’에 도착했다. 양곤 시청 옆에 위치한 불교사원이다. 입구서 주춤거렸다. 안내판에 적힌 문구 때문이다. 다른 것은 다 괜찮은데, ‘노 미니스커트(No mini skirt)’란 말이 마음에 걸렸다. 반바지를 매만지게 된다. 사원을 한 바퀴 빙 돌며, 론지(Longy) 가게를 찾았다. 없다. 들어갈까 말까 갈팡질팡하다 육교 위 걸인에게 ‘론지값’을 주고 마음을 굳혔다.
반바지는 문제가 안됐다. ‘신발 보관값’만 주면, 누구나 출입이 가능했다. 사원에 들어가기 위해 맨발이 됐다. 이곳에 와 처음이다.
바닥이 불났다. 땡볕에 사원 바닥이 불판이다. 햇빛에 비친 황금 사탑이 눈이 부신다. 금빛이다. 진짜 금일까? 헛생각이 든다. 보수공사를 하는지 황금 사탑에 일꾼들이 붙어 있다. 구릿빛 피부가 금빛에 비춰 더 검다. 안전장비 없이 맨몸으로 일하는 노동자들. 일하는 사람은 항상 멋있다. 하지만 진짜 속내 이렇다.
날이 더우니 그늘만 찾게 된다. 나뿐만 아니다. 부처상 앞은 그늘지고 편히 앉아 쉴 수 있어 인기다. 절을 하거나 빌지 않아도 된다. 그냥 둘러 앉아 얘기를 하는 사람. 신문을 보는 사람. 심지어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다. 한국의 시골 원두막이 따로 없다.
사원을 나왔다. 양곤 시청이 바로 앞이다. 미얀마가 한때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다. 건축양식이 영국식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시청 말고도 영국식 건물이 더 있다. 공원에는 오벨리스크를 닮은 독립기념탑이 있다. 이색 풍경 속 이국적인 풍경이라니. 양곤이 더 궁금해진다.
또 다른 영국식 건물로 향한다. 이번엔 시장이다. 보족 아웅상 시장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다시,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에 섰다. 날은 덥고 사람에 치이니 기운이 빠진다. 보족 시장을 바로 앞에 두고 허기를 달랜다. 메뉴는 길거리 뷔페다. 빈자리를 찾자마자 카메라와 가방부터 내려놓는다. 진이다 빠진다.
말이 아니라 손가락을 주문했다. 알아들은 눈치다. 거들어 줄 사람도 나타났다. 나처럼 영어를 단어로 말하는 사람이다. 수준이 비슷하니 잘 통한다. 이것저것 챙겨주기까지 한다. 음식이 나오고 첫 숟가락을 떴다. 정수리로 시선이 느껴진다.
밥알을 흘리면 키득키득 거리고 반찬을 잘 먹으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동남아 사람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현지 반응은 다르다. 외국인으로 바라본다.
육교를 건너 보족 시장이다. 겉은 영국식인데, 안은 미얀마식이다. 꼬부랑글씨 미얀마어 간판에 허름한 내부, 론지를 입은 사람들. 낯선 것들뿐이다. 눈에 익은 것이라고는 바로 앞에 지어진 현대식 아파트 정도다. 못 보던 풍경을 마주하면, 찍고 싶어지는 법. 이번에도 카메라를 들었다. 멀찌감치 떨어져 렌즈로 땡겨 풍경을 담는다. 아직은 미얀마와 거리가 있다.
아이쇼핑만 했다. 살 게 없었다. 달랑 가방하나 메고 왔으니 무엇인가 사면, 짐이다. 가뜩이나 한국서 입고 온 점퍼 때문에 짐이 차고 넘치는 터라 눈으로 보고 머리에만 담았다. 1시간 남짓 시장을 돌고 쓴 돈이라곤 냉커피를 사먹은 게 다다. 미얀마 경제에 도움이 안 되는 존재다.
개구멍을 찾았다. 정확히 말하면, 쪽문이다. 물건에 혹해야 하는데, 사람구경을 하다가 엉뚱한 것만 발견했다. 시장 한 귀퉁이에 길이 나 있다. “못 먹어도 고”란 생각에 쪽문을 넘었다. 기찻길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찾았다. ‘파야 란 트레인 역’이라 쓰여 있다.
이번에도 놀랐다. 기차역이 아니라 허름한 버스정류장 같다. 플랫폼에는 좌판이 펼쳐져 있고 노숙자들이 여기저기 누워 있다. 이곳은 사람이라도 많지, 건너편 플랫폼에는 세 사람이 전부다. 매표소도 보이지 않는다. 정말 기차역이 맞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드는 찰나, 저 멀리서 기차가 온다. 새마을호, 아니 무궁화호급이다. 아니 그보다 더 아랜가? 손이 빨라진다. 카메라 셔터소리도 빨라진다.
양곤의 거리는 낡았다. 건물도 기차도 허름하다. 문명인의 시선으로 보면, 온통 옛날 것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밝고 행복해 보인다. 서울 한복판에서 마주치는 얼굴과 딴판이다. 잘 산다고 행복한 게 아니듯 못 산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다. 쉐타곤 파고다로 향하는 길, 갑자기 도를 닦게 된다. 더위를 먹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