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 문학동네
오래전에 사두고 읽지 않아 표지가 노르스름해진 책.
책을 보면서 잘 울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3분의 1 정도를 남겨두고 계속 울컥한 감정으로 책을 읽어 내려갔다. 아마 책 표지 전체가 노르스름해질 때까지 오래도록 내 책장 한 켠에 남아 있을 것 같다.
소설의 배경은 프랑스 사회의 변두리 지역이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모모는 성매매 여성들이 낳은 아이들을 돌봐주는 로자 아줌마와 함께 가족처럼 살아간다. 그들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의 7층에 살고 있다. 육중한 몸을 가진 늙은 로자 아줌마는 높은 계단을 오르며 끔찍하다고 비명을 지른다.
아이의 시선
모모라는 아이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여기저기 똥을 싸 대고 도둑질을 할 만큼 악동이지만 누구보다 순수하다. 모모라는 아이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세상은 아름답지 못하다. 아이가 짊어지기에 환경은 너무 큰 짐이었고 처참하다 못해 가슴이 조여 온다. 차라리 덮어두고 모르고 싶은 세상 어딘가의 모습들. 덤덤하게 묘사해 가는 모모의 이야기에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있었던 나의 마음 어딘가에 슬며시 노크를 한다. 나이는 어리지만 애어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때 그 시절의 모모.
안락사
로자 아줌마는 신경안정제를 잔뜩 털어 넣으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녀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시간이 갈수록 병들어 간다.
도덕 시간에 토론 주제로 자주 등장했던 안락사. 법으로 허용되지 않지만 로자 아줌마는 안락사를 원한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 마지막은 미련 없이 떠나고 싶다. 생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서일까.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것 또한 축복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기계에 의지해 의식 없이 겨우 숨만 이어가는 삶.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나를 위한 것인가. 주변 사람들을 위한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상실감에 사로잡힌 모모가 감당해야 했던 무게는 얼마나 무거웠을까.
아프지만 함께 인 사람들
사회 뉴스를 보면 여러 사건 사고들에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생각이 번뜩 든다. 그래서 남의 일에 끼어들고 싶지도 않고 어쩌면 엮기고 싶지 않다는 게 솔직한 심정일 수도 있다.
로자 아줌마가 아픈 후 이웃 주민들은 지극한 정성을 보여준다. 옆집 윗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요즘. 이들의 우정은 사람 사는 냄새를 풍겨주기에 충분했다. 여리고 약한 인간이라는 존재는 결국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고민이 생겼을 때 털어놓을 수 있는 하밀 할아버지
진심으로 치료해주시는 카츠 선생님
‘희망’을 알게 해 준 나딘 아줌마
아무도 닮지 않고 아무와도 관계가 없는 롤라 아줌마
가장 좋은 친구 (우산) 아르튀르
늘 외로운 모모에게도 좋은 이웃들이 있다. 그들을 통해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자신의 생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된다.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모모의 아버지가 로자 아줌마를 찾아온다. 그것은 모모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된다. 아버지는 로자 아줌마의 거짓말에 충격으로 죽게 되고, 모모는 그동안 로자 아줌마가 자신과 함께하기 위해 본인의 나이를 속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랑의 끝은 어디일까.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지키기 위해 유태인의 동굴로 로자 아줌마와 함께 들어간다. 그곳에서 아줌마에게 향수를 뿌려 가며 3주를 버틴다.
나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고 언제까지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을까. 극한의 상황에서도 도망가고 회피하는 것 대신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받은 사랑만큼 되갚는 사랑을 보여준 모모라는 아이의 어마 어마한 사랑 앞에 이기적이고 나약한 나의 마음 한쪽이 무너져 내린다.
어린 나이의 모모는 나에게 또 다른 사랑을 보여주었다. 불평불만하며 원망하는 사랑이 아닌 나만의 사랑을 끝까지 지키고 만들어 가는 것. 언젠가 모모를 만날 수 있다면 꼭 끌어안아 주고 싶다.
내 인생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을 다정한 두 사람.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인 “사랑해야 한다”. 로자 아줌마, 모모. 그리고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며 마음 한 구석에 오래도록 품고 살아가야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