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며 좋은 문장이다 싶으면 따로 메모해두기도 하고 포스트잇을 붙이기도 한다. 빼곡히 적은 문장들이나 촘촘하게 붙은 끈을 보면 잘 읽었구나. 싶어 마음이 뿌듯해진다. 나중에 꼭 다시 봐야지 라는 마음으로 남긴 흔적들은 어느새 다음 책에 밀려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다.
새로 봐야 할 책도 쌓이고, 다 읽고 흔적만 남겨둔 문장들도 서로 경계를 두며 쌓이고만 있다.
좋은 책을 읽으면서도 결국에는 무슨 말을 해 둔 걸까. 라는 궁금증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책장을 넘기는 데만 집중했다. 읽어야 할 책이 많았기에, 책 읽을 시간도 너무 부족했기에 책을 읽다 중간에 멈춰 생각하는 건 내게 사치였다.
책을 덮고 나면 이 책은 좋았다. 즉 나하고 맞았다.
안 좋았다. 나하고 안 맞았다. 두 가지 감정만 남아있었다.
책 속의 알맹이가 아닌 껍데기만 남아있었다.
나의 멈추지 않는 독서법은 위험했다. 남는 게 없었다. 저자의 생각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도 어려웠고 나의 생각을 대입해 보는 것도 힘들었다. 저자가 나에게 남기고 픈 메시지는 무엇인지, 더 깊이 생각해보지도 못한 채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 다 읽은 책은 그대로 방치되고 말았다.
앞만 보고 가는 독서는 그야말로 폐해였다.
아름다운 경치가 있는 곳을 드라이브 가는 데 눈을 감고 차만 타고 가는 겪이었다.
그렇게 가는 드라이브가 나에게 남긴 건 무엇일까?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책이 내게 주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여전히 쌓인 책들이 나를 위협하며 빨리 읽으라고 재촉한다. 그냥 읽기만 하라고. 넌 그거면 된다고. 읽기만 하는 사람도 괜찮다고. 나를 유혹한다.
나는 이제 그 부담과 유혹을 벗어던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