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인연이 있듯 책과도 책연(冊緣)이 있나 보다. 여러 일로 힘들어하는 직장 동료에게 주려고 책을 고르다 ‘당신이 옳다’라는 제목에 끌려 선물을 준 기억이 있다. 몇 달 후 동료에게서 정말 고맙다는 인사로 바로 구입하였다. 책과 함께한 지난 몇 주간은 가랑비에 옷이 젖듯 공감이라는 단어에 푹 빠지게 되었다. 때론 아픈 기억의 조각들이 꼭꼭 찌르기도 하고 가슴을 울리는 문장들에 큰 위로도 받으며 그렇게 낯선 자아와 마주치는 색다른 경험을 하였다. 미국 출신 소설가 마크트웨인은“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책은 당신으로 하여금 가장 많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라고 했다. 읽는 동안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들과 질문들에 답을 해보며 지난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정성이 듬뿍 담긴 집밥을 먹는 것처럼 한 구절씩 소화하며 심리적 허기를 채워갔다. 덮어두었던 상처들이 아물어지는 특별한 경험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많은 이들이 “굳이 전문가를 찾아가지 않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라는 공통된 물음에 대한 작가의 진솔한 답변이다. 정신과 의사로서의 궤적이자 직업윤리를 아름답게 승화하여 전하는 그녀의 강렬한 메시지다. 최근 우리 사회가 복잡하고 다양해지면서 인간 사이의 소통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여기에다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인간 내면의 가치 추구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직장생활이든 감옥생활이든, 부자든 빈자든 모든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럼에도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존재 자체에 대한 주목이나 집중을 받은 경험이 적으니 사람들은 아플 수밖에 없다. 다 소모되어 가는 배터리처럼 계속 방전만 하다가 꺼져가고 있다. 사람을 존재 자체로 주목하고 인정하지 않는 공기는 미세먼지처럼 우리 사회 전체를 조용히 덮어버리는 중이다. 누구도 미세먼지처럼 휘감는 그 공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아픈 사람은 계속해서 늘어만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서 하루 평균 37.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의 자살률이며, 특히 10대, 30․40대 같은 젊은 연령대에서 자살률이 크게 늘었다. 현재 OECD 36개국 중‘가장 우울한 나라’라는 신문기사는 암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지인들에게 꾸준하게 소개하는 이유는 공감에 대한 바른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는 걸 절감해서다. 공감만 제대로 알아도 지금보다 덜 아프고 나아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전체 키워드는‘공감’과‘경계’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단어는‘공감’과‘경계’이다. 30여 년 정신과 의사로 활동한 저자가 최근 국가폭력 피해자,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가족, 세월호 참사 피해자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리적 참전 현장에서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공감과 경계라는 씨줄과 날줄로 풀어내었다.
저자가 말하는 ‘공감’은 무엇일까?
“네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내가 몰랐었구나!라고 누군가의 고통에 눈길을 포개는 것이다. 어떤 고통을 당한 사람에게라도 그 고통스러운 마음에 눈을 맞추고 그의 마음이 어떤지 물어봐 주고, 그걸 들으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아파하는 사람을‘환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다정한 시선으로 사람의 마음을 구석구석, 찬찬히 환하게 볼 수 있을 때 닿을 수 있는 어떤 상태이다. 사람을 더 자세히 알면 알수록 상대를 더 이해하게 되고 더 많이 이해할수록 공감은 깊어지는 것이다. 공감은 내 생각, 내 마음도 있지만 상대의 생각과 마음도 있다는 전제다. 누군가의 행동과 생각이 그의 마음과는 별개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공감을 포갤 곳은 상대의 생각과 행동이 아니라 그의 마음 즉 감정이다. 존재의 느낌이나 감정이 공감의 핵심인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은 타인이 옳다 그르다 판단할 영역이 아니다. 마음과 느낌은 존중받아야 할 존중의 고갱이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잘못 생각했던 것들은 무엇일까?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사람은 의사가 치료해야 한다는 것, 우울한 동료를 보면 개별적 맥락들은 무시하고 의사에게 상담하라는 조언, 힘든 동료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했던 주저함, 날씨처럼 변덕스러운데 내 마음의 상태를 무시하고 꾹꾹 누르며 참았던 점....... 꼬리를 무는 생각의 종착역은 공감에 대해 지금까지 내가‘헛똑똑이’였다는데 이르게 되었다. 공감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공감하자는 말을 평소 입에 달고 살았던 나로서는 매우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철저하게 내 기준을 따르도록 상대방에게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나와 다른 의견에 대해 불평부터 하지는 않았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한 감정들은 병의 증상이 아니라 내 삶이나 존재의 내면을 알려주는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이해하여 그전에 비해 스스로 덜 몰아붙이게 된 것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저자가 말하는 ‘경계’는 무엇일까?
“국가의 국경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경계가 존재한다. 사람 사이의 경계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 지키는 일이 어렵다. 경계를 인지할 수 있어야만 나도 지키고 상대방을 침범하지 않을 수 있다. 경계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공감에 대한 정확성이 높아진다. 모든 인간은 상황에 따라 움직이고 적응하는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다. 그 사실을 믿으면 함께 울고 고통을 나누면서도 서로의 경계를 인정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살아갈 힘과 근원이 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들이 지닌 경계를 인식해야만 모두가 각각 위엄 있는 개별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계에 대한 나의 태도는 어떠했을까?
가정에서부터 초등학생인 두 딸에 대해 존재로서 대하기보다는 내 기준에 맞도록 행동할 것을 먼저 강요했다. 어리다는 이유로 자녀들의 고유영역을 수시로 침범했던 것이다. 아이들의 눈높이가 아닌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흔히 말하는 꼰대의 모습이었다.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결혼해서 지금껏 십 수년을 살면서도 편하다는 이유로 아내의 경계 즉 고유함을 인정하는 노력은 부족했다. 직장인, 아내, 엄마, 며느리, 주부 등 여러 역할로서 아내를 대하는데 익숙했다. 아내의 헌신과 희생을 언제부턴가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슈퍼우먼이 되기를 바랐다. 맞벌이를 하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견디는 아내의 모습을 헤아리지 못하고 오히려 나의 고충을 토로하기에 바빴다. 인격적인 존재로서 아내의 경계를 존중하기보다는 주어진 역할에만 충실하기를 바랐던 이기적인 남편의 모습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공감에 실패하는 이유
정혜신 박사는 “사랑하는 사람들일수록 공감에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고 한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사람은 더 많이 오해하고 실망하고 그렇게 서로를 상처투성이로 만든다. 옆집 사는 이웃에게는 친절하고 배려심 있게 대해도 내 배우자에게 그렇게 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 어렵다. 남에게는 특별한 기대나 욕망이 덜해서다. 그러나 내 배우자나 가족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로부터 받고 싶은 나의 개별적 욕구와 욕망이 있다. 그 욕구만큼이나 좌절과 결핍이 쌓인다. 그래서 배우자나 가족에겐 너그럽기가 어렵다”라고 했다. 가까워지거나 관계가 깊어질수록 서로에게 상처 입히고, 서운함이 쌓여 오히려 함부로 말하고 졸렬하게 대했던 것이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가 왜 그랬는지에 대한 의문이 조금은 해소가 되었다.
♧ 적정 심리학 대중화에 큰 기여
이 책은 적정 심리학을 대중들에게 소개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어렵고, 복잡하며 전문가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겼던 정신분석학적 관점과 이론들을 무시한다. 아니 초월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쉽고, 단순하며 누구도 알 수 있는 공감이라는 감정을 활용해 적정 심리학이라는 신기원을 열었다.
이 책을 읽고 충 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만 줄일 수 있어도 공감의 절반은 시작되었다고 한다. 주변에 여러 문제로 힘들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네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내가 몰랐었구나.”라고 따뜻한 위로부터 전해야겠다. 그리고 온 체중을 싫어 그 사람의 존재에 집중한 후‘당신이 옳다’라는 마법의 문장을 전해야겠다. “공감의 실체를 알고 삶에 적용할 수 있으면, 많은 경우 전문가를 찾지 않고도 치유받고 치유해 주며 살 수 있다. 갈등이나 문제가 미연에 예방되므로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가 역대급으로 줄어든다.”는 자자의 말을 오롯이 가슴에 새기며 일상 속에서 곱씹으며 살도록 노력할 것이다.
“당신이 옳다”“당신이 옳다”“당신이 옳다”라는 말이 사람들의 가슴과 가슴으로 전해진다면 우울한 대한민국을 비추는 햇살 같은 ‘공감 지침서’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