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예술을 사랑한 철학자 최대한 신부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진솔하고 담박하게 전해 줍니다. 꾸준히 종교 활동을 하면서 3년 동안 매주 기고했던 에세이를 엮어 나온 책으로 책 제목은 돈 맥클린의 '빈센트'의 가사에서 착안했습니다. 여기서 당신은 절대자, 가족, 사랑하는 사람 등으로 이해됩니다. 신부님의 맑은 영성과 시선으로 영화, 음악, 문학들을 전달하여 작품 이해를 돕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좋은 문화예술을 설명하는 소개집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개인주의와 물질 만능주의, 편 가르기가 판치는 세태에 지금 우리가 무엇을 잃고 사는지,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를 깨우쳐 줍니다. 신부님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행위이자 인생을 성찰하는 귀한 시간을 인문학’이라 정의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쉽게 접하도록 노력해왔습니다. 인간 본질에 대한 고민으로 애써왔던 저자의 삶의 편린들이 조합되어 독자의 마음 문을 자연스레 두드립니다. 세상이라는 책을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애쓴 절절한 기록이자 노력입니다. 그러기에 익는 동안 때론 숙연해지기도 하며 고운 글에 마음이 정화되기도 했습니다.
50편의 단편은 음악, 영화, 종교, 철학, 문학 등이 잘 버무려 있습니다. 마치 보물 찾기를 하는 것처럼 책에 소개되는 음악을 찾아들어보고 검색하며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색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돈 맥클린의 ‘빈센트’를 들으며 고흐의 지난한 삶을 떠올리고, 독일 출신 바리토너 피셔 디스카우가 부른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들으며 외로움, 처량함, 우울감 등 낯선 감정들과도 마주했습니다. 티에르 앙의 ‘나의 정원’은 눈을 감으면서 잔잔한 호수가로 생각 여행을 가기도 했습니다. 독일의 낭만주의 음악가 슈만의 ‘시인의 사랑’은 잊고 있었던 사랑의 감정을 일깨우는순간도 있었습니다.
저자가 감명 깊게 보았다는 영화 <마지막 사중주>, <멋진 인생>, <굿바이 칠드런>, <세상의 모든 아침>, <버정 성시>, <리틀 포레스트>, <화양연화>, <야구왕 루 게릭>, <성 프란체스코>,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짧은 소개 중 몇 작품은 따로 보고 싶은 목록에 메모하며 다음의 연을 기약했습니다.
책은 총 4개의 장, 50개의 소주제로 구성되었습니다. 1장 ‘눈물 맺히는 이 찬란한 계절에’, 2장 ‘길을 걸었어, 봄이더군’, 3장 ‘슬픔을 알아 행복한 이여, 4장 ’ 운명과 대처하는 법‘으로 구분되어 계절적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담았습니다.
인상 깊은 문장
<p28> 미움을 이겨내는 것, 그것은 오직 선한 마음, 선을 사랑하는 마음에서만 가능합니다.
<p75> 평범한 사람들이 매일매일 경험하고 수행하는 일상의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다 깊이 통찰하게 합니다. 이는 사실 오늘날처럼 각 개인의 중요성과 대체 불가능함이 가차 없이 부정되는 시대에 굳건히 지켜져야 할 사상입니다.
<p97> 좋은 것을 그늘진 마음 없이 즐기기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좋은 것을 누리면서도 기뻐할 줄 모르거나, 행복한 순간에도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앞서곤 하지요. 그래도 애를 써야 합니다. 인생에는 좋았던 순간에 집착하여 사라지는 것을 미리 두려워하고 서글퍼하는 것과는 다른 길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배워야 합니다.
<p101> 죽음에 대한 명상은 우리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지금의 삶을 살게 하는 길을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죽음으로 단절되는 유한한 삶에서 슬픔과 허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약속된 영원한 삶의 빛나는 조각도 보게 될 것입니다.
<p129> 편안하되 진지한 마음으로 자연과 마음의 풍경을 바라보며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은 우리에게 한 해를 올곧이 살아갈 힘을 줄 것입니다.
<p224> 원자화된 인간의 삶이 공동체적인 유대로 변하지 않는다면 세상엔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공동체의 가치는 더 이상 정치체계나 전통이 획일적으로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개인이 역경과 고통 속에서 용기와 인내를 가지고 삶의 의미를 배우고 깨우쳐야 합니다.
<p227> 소망을 기적처럼 간직할 수 있는 것은 소망이 단련되고 굳건해져서 흔들리지 않는 희망이 될 때 가능합니다.
<p237> 고향을 떠난 세상의 모든 사람이 외롭고 위태로운 떠돌이가 아니라 온전히 존엄한 사람을 살 수 있도록 응원하고 도와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길 위에 있는 존재’이자 ‘순례자’이며 ‘나그네’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p245> 각자가 고립되고 경쟁에 몰입한 각자도생의 삶에 사로잡혀 있을 때, 도덕적 규범과 인간애를 도외시하며 고삐 없이 이윤과 탐욕을 향해 질주하는 사회를 방관할 때, ‘더러운 영’은 우리 각자를 옥죄게 됩니다.
<p259> 소크라테스가 가르쳐 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되게 철학을 수행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죽음을 연습하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연습’하는 것이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이자, 이를 추구하는 사람만이 참된 의미를 알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삶을 풍성하게 해 줄 지식과 지혜가 잘 어울린 책입니다. 수많은 예술 작품을 글 속에 녹여내어 작품의 가치와 의미를 쉽게 설명해 주며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가 충실히 담긴 책입니다. 저자의 글 속에 소개된 음악, 영화, 책 등으로 시선이 넓어진다면 문화예술적 소양이 넓어지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자는 사제의 눈에서 한걸음 떨어졌으되 세상을 함께 걸으며 삶과 분리되지 않는 종교인이 살아갈 모습도 제시합니다.
소주제별로 시간을 두면서 천천히 읽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수백 가지 음식을 다 먹을 수는 없듯이 인연이 되는 몇몇 작품들을 내 삶에 끌어오는 것만으로도 좋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