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티 정문선 May 22. 2021

[일상 관찰] 번아웃 증후군 톺아보기(상)

이제는 말할 수 있는 아픈 기억과 마주합니다.

어두운 곳을 비추는 불빛과 같은 누군가가 있다면 쓰러지지는 않는다.


아픈 경험을 되새기기


부서를 옮기게 되었다. 공교롭게 두 사람 몫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전산시스템도 다시 배워야 했고 모든 것이 낯설었다. 물어볼 사람도 마땅찮아 업무마다 터덕거렸다. 며칠 후 대수롭지 않게 사무 분장의 가짓수가 많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모르니 용감했다. 한 줄 한 줄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담고 있는지 조금씩 파악되니 점점 겁이 났다. 이전 근무했던 곳과는 중압감이 달랐다. 급하게 떨어져 바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대부분 자료를 취합해서 재생산하는 일이었다. 전에 참고하거나 주변에 물어가며 겨우 처리했다. 나름 적응하기 위해 야근과 주말까지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팀장에게 일이 진척되지 않는다고 소리를 듣자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뭔가 잘못 돌아간다는 막연한 느낌이 었다. 몇 번 고민하다 상관에게 힘든 상황을 하소연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지금 맡은 일의 양도 많고 비중이 있어 혼자 감당하기는 힘듭니다. 일을 조금 나누어 주십시오”라며 부탁했다.


회의를 하면서 대책을 논의했지만 다들 여력이 없었다. “조금씩 나아질 거야”, “틈나는 대로 같이 도와줄게”라는 메아리 같은 대답이었다. 울려 대는 전화 소리에 가슴은 벌렁 거렸고,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자주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쌓인 일들은 하나같이 급하게만 보였다. 내달라는 자료는 쏟아지는데 일 처리가 서투르니 답답했다. 간단한 일도 업무 파악에는 최소 시간은 필요한 법이다. 차분하게 정리하며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으니 문제 해결에 제대로 접근할 수 없었다. 해야 할 일 리스트를 지우는 것보다 새롭게 늘어나는 것이 많으니 탄식만 깊어졌다. 짧은 기간에 업무 역량이 바로 좋아질 리는 없었다. 노력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  ‘오늘도 하는 것 없이 지나갔다’는 허탈감을 안은채 샛별을 보며 퇴근했다.

먹구름은 비가 내릴 징후다. 하인리의 법칙처럼

번아웃 증후군 증상

         

 일의 무게에 짓눌려 점점 지쳐갔다. 인풋이 없는 채 완벽한 아웃풋을 강요하는 환경에서 기력은 점점 소진되었다. 다들 여유가 없는 터라 의지할 동료도 없었다. 일에 대한 압박감에 어깨는 굳어지고 스트레스는 점점 심해졌다. 작은 일도 예민하며 쉽게 짜증을 냈다. 주말부부로 평일은 혼자 생활하는 터라 늦은 시간 온기가 없는 텅 빈 방에 누웠다. 애써 참아도 몸에 통증 때문에 아파서 눈물이 자꾸 났다. 독박 육아와 사무실 일로 지쳐 있는 아내에게 "잘 지내고 있으니 얘들 잘 챙기라"는 말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런저런 걱정으로 잠을 자지 못했다. 상사는 일이 제때 안 된다며 다그치며 화를 다. 처음과는 다르게 자신 없이 기계적으로 “네. 바로 하겠습니다.” 라며 순간을 넘겼다. 상사도 못 믿고 걱정하는 눈치였다. 늘어난 테이프처럼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렉이 걸려 버벅거리는 것처럼 생각의 흐름도 자주 끊겼다. 대화에 집중하는 것도 힘들었다. 업무 지시는 받아쓰기 수준이었다.


 잠을 뒤척이며 뜬 눈으로 보낸 지 2주가 지났다.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출근했다. 오후에는 졸음이 쏟아져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렸다. 운전하는 것도 버거웠다. 입맛이 없으니 먹는 것도 귀찮았다. 긴장한 채로 일하니 손과 등에 땀이 자주 났다. 입에서는 단내가 나며 양치를 해도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몸의 리듬이 깨어지니 기억력까지 급속도록 나빠졌다. 물건을 찾느라 허비하는 시간도 늘어나고 언제라도 쓰러질 것 같아 두려웠다. 30분이면 할 일을 몇 시간 째 붙잡고 있었다. 앉아 있는 시간은 많은데 생산성은 최악이었다. 겨우 연명하는 사람처럼 생활을 했다. 깜깜한 동굴을 언제 벗아날수 있을까라며 많이도 울었다. 새벽에는 아내가 혹시 오지 않을까 문을 우두커니 바라봤다.


근무 시간 중에 창밖 보며 멍 때리는 시간이 늘었다. 주변 시선과 사무실 공기도 전과 같지 않고 가라앉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잘 적응하며 즐겁게 보이는데 나만 적응을 못하는 것 같다. 아이들과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며 버뗬는데 한계에 이르렀다. 가슴이 답답하니 호흡도 불편했다. 어깨와 허리 통증에 편두통까지 심해졌다. 살기 위해선 멈춰야 했다. 모든 걸 내려놔야 했다. 번아웃 증후군이었다. 그 이후 10년이 지났다. 아픈 경험을 되새기는 이유가 있다. 10년 전에는 조직 생활에서 도태되어버린 사람, 조직에 피해 주는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모든 것을 내가 안고 가야 하는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를 볼보지 못했다. 소중한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번아웃 증후군     


치열한 경쟁이 일상이 된 현대 사회에서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무한 질주를 해야 한다. 계속되는 야근이나 과중한 업무에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을 붙잡고 있다. 더욱이 요즘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등으로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을 하지 않으면 자신의 가치가 떨어진다 생각하고 손에 일이 없으면 불안해하거나 죄의식을 느끼는 일중독에 빠져 번아웃(Burnout) 상태에 이르게 된다. 미국의 정신분석 의사 허버트 프뤼덴버그(Herbert Freudenberger)가 처음 사용한 심리학 용어 번아웃 증후군은 탈진 증후군, 소진(消盡) 증후군이라고도 불리는데 어떠한 일에 몰두하다가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계속 쌓여 무기력증이나 심한 불안감과 자기혐오, 분노, 의욕 상실 등에 빠지는 증상을 말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지친 뇌, 번아웃에서 탈출하라

 (중년 건강 백과, 2016. 5. 26., 오한진)    

노을을 바로보며 그 때를 떠올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 관찰] 작은 성취를 쌓아가는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