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동안 책 전도사가 되었다. 직장동료, 만나는 지인들에게 읽었던 책을 선물하며 독서 필요성을 전했다. 대다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공부의 필요성을 모르는 사람에게 공부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쓸데없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는 책 한 권이 삶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기에 지금도 계속 책을 전하는 편이다. 가끔 책을 잘 읽었다고 말해주는 분은 언제라도 고맙다. 다른 책을 선물하면서 소중한 책연을 이어간다.
누구나 살면서 위기가 온다. 아픈 경험은 고통스럽지만 위대한 스승이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성장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삶의 전반을 돌아보며 현재를 재설정해야 하는 일도 생긴다. 암담한 현실에서 타인의 위로는 어느 정도는힘이 된다. 그렇지만 홀로 이겨내며 극복해야만 한다.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붙잡고 매달렸던 게 책이라서그런지 책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무척 반갑다. 술이 아니라도, 운동이 아니라도, 공통된 취미가 없어도 같은 책을 읽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쉽게 대화할 수 있는 것이 책의 매력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책이 삶에 일부가 되어 함께 호흡하며 내 부족함을 채워 주었다. 책을 읽는다고 바로 밥이 나오지는 않았다. 읽지 않는 사람들은 고리타분한 모습으로도 비칠 수 있다. <책은 도끼다>의 박웅현 작가는 책을 읽으면 적어도 밥은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인생이 더 행복하고 풍요로워졌다는 의미다. 책을 통해 밀도있이 연결된 관계도 제법 많다. 강연에서 만난 다양한 저자, 독서모임에서 알게 된 독서 고수, 책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기회도 있었다. 한결같이 그들은 말했다. "세상에는 책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과 생각 없는 사람으로 나뉜다고. 전자는 끌어가는 삶을 살지만 후자는 끌려가는 삶을 산다"라고. 그분들과 연결은 책이었지만 지금은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고 과거보다 미래를 말할 수 있는 관계로 나아가도록 노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는 것과 실천이 균형을 이루도록 내가 성장해야 할 것이다.
울창한 숲도 시간축적의 산물이다
비록 독서습관을 만드는데 몇 년은 걸렸지만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독서습관은 밥 먹는 것과 같아야 한다'라고. 어릴 때 용두사미였던 내 별명이 20대까지 나를 지배했음을 알았기에, 30대 후반에 넘어졌던 이유를 찾았기에, 아무리 바빠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 독서는 다시 넘어지지 않기 위한 배수진이었던 셈이다. 나에게 책은 읽어도 좋고 읽지 않아도 좋은 것이 아니었다. 책이라는 부유물을 안고 세상이란 바다에서 우선 살기 위했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무엇이 인간다운 삶일까?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는다. 스스로 학습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책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아도 편리한 세상이니 책 읽을 시간에 생산적인 다른 일을 하라고 말한다. 최근 스마트폰과 AI알고리즘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어서 더욱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착각하고 있는 게 있다. AI가 대신 내 인생을 살아 줄 수는 없다.생각하는 힘도 기계가 대신해 주지 않는다. 30년쯤 후에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모든 결정을 기계에 의존한다면 인간의 미래는 과연 행복할까. 선택은 기계가 다하고, 선택한 결과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과연 인간다운 삶일까? 어쩌면 태어난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을 합친 힘은 조만간 수십억의 사람들을 고용 시장에서 밀어내고 자유와 평등까지 위협할 수 있다. 빅데이터 알고리즘은 모든 권력이 소수 엘리트의 수중에 집중되는 디지털 독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중, P13>
사고하는 힘을 기르는 것은 책만큼 좋은 자료도 없다. 한 사람이 평생 연구한 내용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면 그 책을 읽으며 내 것으로 만든다면 어떻겠는가? 1,000권을 이해한다면 머릿속에 작은 도서관을 가지고 다닌 것과 같다. 흔히 고전이라고 불리는 많은 책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분명 있을 것이다.인간의 본질적 문제에 먼저 고민했고 보편적 진리를 담고 있어서다. 즉, 생각의 확장을 돕는 지식과 지혜를 주기 때문이다. 앞으로 사는 동안도책을 읽으며 지식을 확장하고 생각의 지경을 넓혀 지금보다 더 풍요롭게 살고 싶다. 나만 좋은 것에서 타인에게도 좋을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함께 사는 세상에 작은 기여를 한다면 보람되지 않겠는가?
정보를 구별하는 능력
지금도 무분별한 정보가 쏟아진다. 자극적인 공짜 뉴스, 가짜 뉴스가 판을 친다. 양질의 콘텐츠를 가려내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미래에는 '더 많은 정보'보다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이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는 것의 차이를 식별하는 능력이며, 무엇보다 수많은 조각들을 조합해서 세상에 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다라고 강조했다. 정보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은 끊임없이 배우며 노력한 산물이요. 질문하며 답을 찾는 반복 과정에서 생긴 생각 근육에서 나온다. 상대의 주장이 타당한지, 근거는 무엇인지 객관적인 자료도 찾아보며 스스로 진위를 가릴 수 있는 생각의 축척을 통해 길러진다. '과연 그러할까'라는 질문을 하면서 보이는 것 이상을 볼 수 있도록 담금질해야 한다. 운동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알지만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사람이 드문 것처럼 책도 마찬가지다. 매일 꾸준하게 책을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민독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 세 사람 중 한 사람음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독서 양극화도 심해지고 있다. 평균 독서량이 6권 내외인 것도 책 읽는 사람은 많은 양을 읽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것은 다소 불편한 일이다. 시간이 걸리고 집중하는데 에너지가 필요하다. 읽지 않는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불필요한 시간만 아껴도 2주일에 한 권은 읽을 수 있다.경험상 책을 읽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점 중 하나는 정보를 무비판적,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다는 데 있다. 쉽게 얻은 지식은 휘발성이 강해 결코 내 것이 되기 힘들다.
직장 상사가 늘 하는 말은 "보고서 한 단어도 내가 이해되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보고서를 보면 그 사람이 얼마큼 열과 성을 다했는지 금방 볼 수 있게 된다."라면서 보고서가 공무원 역량의 척도라고 하였다. 보고서는 그 사람의 얼굴이라는 말이 허투루 들렸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왜 이 보고서를 만드는지 스스로 고민하고 자료 찾기, 다양한 사례 비교 분석, 전문가 자문과 현장 목소리 청취 등을 종합하여 결국 수요자 입장에서 기획하여 내부 고객을 설득하는 것이 생생한 보고서를 만드는 길이라는 걸 30년 경험으로 알려 주었다.보고서는 결국 문제를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다. 수요자를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이다.
독서는 이해력과 분석능력,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기에 꾸준한 실천은 업무 성과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게 된다. 기획력을 기르려면 많이 읽고 글로 표현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공무원이 책을 더 읽어야 하는 이유다. 생각의 힘을 기르는 것은 곧 일에 생산성을 높이는 것과 연결된다. 문제가 발생하면 효과적으로 빨리 대응하기를 누구나 바란다. 통장에 돈이 있어야 어느 때나 인출할 수 있듯이 평소 기획 역량을 저축해 두지 않으면 어려움을 겪게 된다. 내가 주도하여 살지 못하면 기계의 부속품처럼 살 수 있음을 기억하자.내가 먼저 변하면 가족이, 직장이, 사회가 바뀜을 생각하자.
둘째와 과학원을 보며 미래 세상을 그려본다.
정보 편식은 지양
별생각 없이 먹는 인스턴트 음식이 우리 몸을 망치는 것처럼 정보 편식도 지양해야 한다. 균형 잡힌 식단이 건강에 좋은 것처럼 균형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도 꾸준히 독서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바쁜 일상에 치여 살면서 허둥지둥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는 않는가? 앞만 보고 달려가는 기관차처럼 살지는 않는가? 몸과 마음을 혹사하면서 바로 잡힐 것 같은 목표를 위해 달려가고 있지는 않는가?
지금 몸과 마음이 지쳐있다면 책을 읽어야 할 신호로받아들이자. 무기력하고 공허감이 든다면 더욱 책을 읽어야 할 때다. 몸도 마음도 불안해도 마찬가지다. 답답한 현실에 방황하고 있다면 나보다 힘든 일을 겪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세상은 우여곡절로 직조된 복잡한 이야기라 생각한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 이해해도 생각의 각도가 달라질 것이다. 길을 몰라 산길을 헤매던 것처럼 실패했던 독서를 몇 년 동안 경험해보았다. 그러나 산길을 돌아다녔기에 어디가 위험한 지도 알았으며 길 찾는 요령도 알게 되었다. 산을 먼저 오른 사람에게서 지혜도 얻을 수 있었다. 독서는 내게 밥을 먹는 것과 같다. 매일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없듯이 읽는 책 중에서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책도 있다. 그러나 책을 읽을수록 고르는 요령도 생겨 양서를 고를 확률도 높아졌다. 독서모임을 통해 추천된 책은 여러 사람의 추천이 반영되기에 그만큼 도움이 되었다.
독서도 단계마다 총량이 있듯, 방황하는 것도 총량이 있나 보다. 사랑도, 미움도, 관계도 임계량이 넘쳐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음을 깨우쳤다. 몸이 아픈 후 비로소 건강관리에 더욱 신경 쓰는 것처럼, 지치고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좌충우돌한 내 경험을 나누며 응원하고 싶다. 변화와 성장을 열망하면서도 그에 따른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지 않으면서 수확을 바라는 마음과 같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이가 독서습관을 갖기를 바라는가? 21세기 인재가 되길 원하는가, 부모가 먼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소비하는 모습보다 생산적인 시간을 지향해야 한다. 영국 작가인 새뮤얼 스마일즈는 “그 사람의 인격은 그가 읽은 책으로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독서가 우리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 읽는 공무원이 많아져 지금보다 행복한 대한민국을 그려본다. 오늘도 기승전독서를 외치며 읽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