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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산책]상실과 상처를 겪은 이후에 치유에 대해

킨츠키 도자기를 보며 느낀 깨달음

by 모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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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상처를 겪은 이후에 치유에 대해 생각할 때, 나는 항상 상처 입고 깨어졌다가 금빛으로 다시 태어나는 킨츠키 도자기를 떠올린다”
<푸름이 밀려온다, P125>

킨츠키는 일상을 함께한 소중한 그릇이나 화분이 깨졌을 때, 다시 되살려 사용할 수 있는 의미로 ‘금빛 수선’이라고 불립니다. 깨진 도자기를 금으로 보수하는 일본 전통 예술입니다. 불완전함의 미학을 나타내는 일본 문화로 덜 완벽하고 오래되고 낡은 것에서 깊이와 충만함을 중요시하는 ‘와비사비’ 정신을 표현합니다.


‘난 어차피 해도 안 돼’,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어”라며 많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유년부터 군대 가기 전까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았습니다. 당구, 농구, 온라인 게임, 포커, 음주가무을 차례로 섭렵하면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무늬만 대학생, 먹고 대학생이었습니다. 대학은 나와야 된다는 부모님의 바람으로 성적에 맞춰 겨우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수학과 과학은 전혀 흥미 없음에도 삼촌이 공대 다닌다는 이유로 그쪽 계통으로 진학했습니다. 대학 내내 적성 타령만 하면서 계속 다녀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대학 때까지 무엇 하나 진득하게 이뤄본 경험이 없습니다. 낮에는 당구장, 저녁에는 호프집 아르바이트, 새벽에는 친구들과 어울렸습니다. 군대 가기 전 원 없이 놀아보자는 안일한 생각으로 '인생 뭐 있어'라며 살았습니다. 제대 후 2년 동안 계절학기로 빵구난 학점을 때우느라 뒤늦은 후회를 하였습니다.


대학교 2학년 미팅에서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내게 과분한 그녀입니다. 나를 존재로서 인정해주었습니다. 미소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까지 좋았다며 좋은 감정으로 대해주었습니다. 그녀를 만난 후 몸의 장기처럼 지녔던 열등감과 결핍들이 조금씩 메워져 갔습니다.


사랑할 줄 모르는 저에게 상대는 어떻게 대하는지, 마음과 행동으로 대화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귀인같은 존재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대체 어디까지 손을 넣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반품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듣는 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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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제게 킨츠키 장인입니다. 부서지고 깨어졌던 자존감을 사랑이란 금빛으로 덧칠해서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26년을 함께하면서 많은 힘듦이 있을 때마다 같이 아파해주고 온몸으로 안아주었습니다. 변함없는 사랑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그녀의 희생과 헌신에 큰 빚을 졌기에 더 열심히 사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처음 만난 때 기억나요. 뭐가 그리 좋았어요”

짓궂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제 운명이었어요.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나 한 번으로 족해요"

"......"


운명인 사람은 가시밭길을 걸었고 지금은 자갈밭을 걷고 있습니다. 그저 그런 느낌이었던 사람은 그 사람에게 평생 나의 짐까지 맡긴 채로 살아갑니다. 책을 읽고 글 쓰는 삶보다 먼저 삶을 정성스럽게 살라는 아내의 따끔한 충고를 기억하면서 오늘도 하루라는 인생 페이지를 채워갑니다. 소중한 분들에게 받은 사랑을 기억하면서.

출근 길에 보이는 꽃, 몸짓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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