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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산책] 역사서를 읽는 것은

현재의 모습을 더 알기 위해 역사를 배우듯

by 모티
Photo by Edwin Andrade / Unsplash
"역사서를 읽는 것은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남긴 이야기에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의 무기가 되는 글쓰기, P22>

내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입니다. 나만의 경험과 생각을 현하기에 쉬우면서도 여러 자아의 눈치를 봐야 하니 녹록지 않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모른다면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싸우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감정조절에 애를 먹습니다. 나를 모른다는 것은 표류하는 난파선처럼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 사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정작 내면의 소리에 무덤덤하면서도 남을 아는데만 열심입니다.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만 찾고 보이는 문제만 집착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은 뒷전이고 임시방편으로 처리하는데 익숙합니다. 변덕스러운 마음 날씨에 대응하는 것도 서툽니다. 원인모를 불안과 두려움이 똬리를 틀어 머릿속이 복잡하기에 그렇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옭아매며 깊은 심연으로 끌어내리기도 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10년 후 나는 어떤 모습일까"

Photo by Paola Chanya/Unsplash
"글을 쓰는 것은 자기 자신과 관계를 맺는 일이기도 하다. 글을 통해 자신과 만나는 행위에는 지성과 직관, 상상이 동시에 개입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모른다면 어떻게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겠는가? 글을 쓴다면 자기 자신을 알고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삶의 무기가 되는 글쓰기, P19>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나와 맞는 사람은 누구인지, 예민한 부분은, 어떨 때 기분이 다운되는지, 몸의 상태는 어떤지를 알려하지 않았습니다. 심리검사 및 상담, 가족과 지인, 마인드맵 등으로 나를 아는 것은 표면적인 모습일 뿐이었습니다.


책과 지인으로부터 글을 쓴다는 것은 내 과거와 먼저 대면해야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내면의 아픈 상처까지 마주하는 일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눈물 비가 쏟아져야만 해갈되는 척박한 마음밭이었습니다. 부족함과 어리석음을 인정하는 것이 닫힌 마음을 푸는 열쇠였습니다. 과거의 모습을 하나 둘 글로 표현하며 정리했습니다. 과거의 축적이 현재이기에 과거를 잘 관찰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글로 풀었습니다. 유년시절, 초중고, 대학, 군대, 취준생, 직장생활로 나누어 어렴풋한 기억 조각을 하나씩 꺼내어 연결했습니다. 부모님과 애착관계 형성은 부족했고, 증조부모 밑에서 자란 탓인지 하고 싶은 것은 하며 자랐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대신하지는 못했습니다. 애정 결핍과 정서 불안은 서툰 관계들로 나타났습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자주 다퉜고, 집에서는 형한테는 대든다고, 여동생은 돌봐주지 않는다며 양쪽에서 터지는 의문의 패배도 많았습니다.


일 년 중 제사만 10번이 넘는 장손 중심 유교문화, 가부장적인 환경, 농사일과 대가족 부양 등 척박한 토양에서 복음 씨앗을 뿌리며 새벽마다 무릎으로 견디셨던 어머니의 절규는 아직도 귓전에서 메아리칩니다.

"부모가 억압적이거나, 자녀를 방치하거나 학대할 때 아이는 애착 손상을 입습니다. 성적에 따라 조건부 사랑을 주는 부모, 서로 싸우느라 자녀에게 사랑을 주지 못하는 부모, 먹고사는 일 때문에 자녀를 돌볼 시간이 없는 부모도 본의 아니게 자녀에게 애착 손상을 입힙니다." <삶의 무기가 되는 글쓰기, P45>
Photo by Green Chamberlain/Unsplash

과거를 기록하면서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숨기고 싶은 과거라며 묻어둔 것이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놀랍게도 지금도 가끔씩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 몇 번의 실패의 기억이 각인되어 도전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군대 가서도 '고문관'소리를 들었던 것은 실패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성취에 대한 경험은 없고 익숙한 것에 대해 집착, 변화를 두려워했던 나약한 모습이 내 성장을 가로막았던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나의 단점을 늘 지적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눈에는 기대에 못 미치는 의지력 약한 아들이었습니다. 몇 시간 동안 토해내듯 글을 쓰고 서럽게 울었습니다. 내면 아이는 온몸에 난 상처 때문에 피를 흘리며 울고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글을 나누며 함께 울었습니다.


아내는 나를 안아 주며 "당신이 왜 지금껏 그랬는지 이해가 돼요. 아픈 아이 내가 더 사랑해 줄게요" 그날 이후 아내는 나와 내면 아이를 함께 돌봐주었습니다. 내면 아이가 괴물에서 이성적인 아이로 변해갔습니다. 자존감 회복, 당당한 태도라는 선물도 주었습니다. 과거를 기록한 후 달라진 놀라운 변화입니다.


가끔씩 뒤를 봐야 한다. 주변을 살피면서

몇 개월간 생활을 기록하며 나에 대해 알아가기로 했습니다. 자기 계발, 건강, 관계, 신앙, 감사 등으로 나누어 목표했던 일, 달성했던 일을 적었습니다. 감사의 내용은 처음엔 '하루하루 기록해서 감사합니다', '직장을 다닐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가족이 건강해서 감사합니다'를 반복해서 쓰기도 했습니다. 아쉬운 일은 성찰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6개월 동안 기록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주었습니다. 발전적 관계를 지향하며 '배움'과 '성장' 그리고 '겸손'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타인을 돕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주로 사진 찍기, 산책, 음악 감상, 자연 관찰, 카페 탐방, 아내와 데이트, 좋은 만남을 통해 활력을 얻었습니다. 지칠 때는 책과 글쓰기로 삶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피곤할 때는 반신욕 하며 긴장을 풀었고, 작은 목표를 이룰 때마다 가까운 곳을 여행하며 애씀을 보상해주었습니다.


취약한 부분은 잘못된 식습관에서 오는 체중관리였습니다. 과체중에 운동량은 부족하여

다이어트하며 음식을 조절하는 일은 풀어야 할 숙제처럼 따라다닙니다. 저녁 12시 이후에 잠을 자면 다음날 생활하는데 지장을 주었고 생산성은 50% 이상 떨어졌습니다. 스트레스 쌓일 때 습관처럼 음식으로 푼다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성격은 외향적인 듯 하나 누군가와 친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일이건 관계건 내가 주도하며 긍정에 답이 있다고 믿는 편입니다. 유년시절 가장 부족했던 '성실'과 '끈기'가 지금은 장점이 되었습니다. 말이 앞서는 사람, 잔머리 굴리는 사람을 유독 싫어합니다. 술자리보다는 정담 나누는 게 좋고, 남 눈치 보며 어쩔 수 없이 하는 행동에는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납니다.

Photo by Rhys kentish/Unsplash
"자산의 내면을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발견된 상처를 치유해야 합니다. 치유되어야 행복한 삶으로 멋진 항해를 떠날 수 있으니까요."
<삶의 무기가 되는 글쓰기, P51>

누적된 기록은 지향점을 말해주었습니다. 건강과 컨디션 조절을 위해 규칙적인 생활하기, 가족과 밀도 있게 보내기, 아침시간 활용, 근육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전환, 확실한 의사표시, 스마트폰 사용 절제, 데드라인 전 일처리 하기는 개선해야 할 부분이었습니다. 액션플랜으로는 성경 필사, 틈틈 독서, 독서커뮤니티 운영, 근력 운동, 힘든 동료 응원하기와 글쓰기로 갈무리하며 버킷리스트를 이뤄가기로 정했습니다.


치유된 상처가 있는가 하면, 아직도 불쑥불쑥 나를 괴롭히는 또 다른 나에 끌려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거처럼 깊은 지하로 내려가지는 않습니다. 자아와 마주하는 경우가 많기에 그렇습니다. 상처 깊은 심연은 빗장을 쉽게 열지 않았습니다. 수면 아래 가라앉은 진흙탕처럼 평소는 맑아 보입니다. 어떤 계기로 민감한 부분을 헤집게 되면 마음은 혼탁해집니다. 흥분되며 짜증이 납니다. 그러나 왜 그런지 알기에 스스로 이유를 찾으며 심호흡을 크게 합니다. 낯선 자아가 계속해서 화를 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어린아이 일 때 받은 상처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진 일입니다. 태어난 것도, 어린 시절 자라난 환경도, 부모도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때 받은 상처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결코 자기 잘못에서 비롯되지 않았습니다."
<삶의 무기가 되는 글쓰기, P54>

글을 쓰면서부터 성찰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기에 즐거울 때도 있습니다. 매일 부족함은 채워가며 넘치지 않아야 할 것을 경계합니다. 삶은 예측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선택과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입니다. 여전히 주변 환경, 가족 형편, 몸의 상태, 직장생활, 훅 들어오는 부탁과 기대, 생각대로 되지 않는 계획들에 자주 포위되기도 합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생각하며 출근하지만 어제보다도 못한 상황은 언제든지 발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멀리 자연을 보며 기분을 전환합니다. 전쟁 같은 하루를 보냈다며 자는 것도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하던 때를 떠올립니다.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바닥에서 지냈던, 그렇게 힘들었던 기억도 성장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아팠던 만큼 맷집과 참고 넘기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책에 기대어 아픈 상처들에 자유로워지는 노력을 합니다.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나이니까요. 나부터 나를 사랑해야 하니까요.

Photo by 하루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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