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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산책] 내가 느끼고 이해한 것들을 한 권 책으로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by 모티
"내가 느끼고 이해한 것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기록에 남기는 것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세팅 중에서>

쉽게 얻는 것은 없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제대로 성취를 이뤄본 경험이 많지 않습니다. 대학 졸업 후 공무원 시험에 합격 정도가 떠오릅니다. 함께 공부했던 여자 친구의 도움이 컸습니다. 해찰을 못하도록 애정 어린 감시와 합격할 수 있다는 응원 덕분이었습니다. 2005년 상반기 시험에 합격한 이후 지금까지 공직생활을 하고 있지만 기본이 부족한 채 좌충우돌하며 적응하는 게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입사 5년째는 버거운 소송에 휘말려 빈약한 법률 지식으로 답변서 쓰느라 매일이 잿빛이었습니다. 옥상에서 먼 산을 바라보며 "직장을 다녀야 하나" 갈등하던 때였습니다. 가정이 없었다면 그만두었을 정도로 힘겨웠습니다. 소송에 더해 일을 못한다며 남 탓하는 상사와 극기 체험도 했습니다. 그 이후 '맷집 좋다'는 말을 들었지만 외상 후 트라우마는 오랫동안 남았습니다. 오죽하면 근무처를 옮기며 연락처를 지웠습니다. 우연히 받게 된 전화, '수신 거부'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입사 8년 차, 새로운 업무와 환경에 적응할 틈 없이 두 사람 몫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중압감에 짓눌려 두 달 만에 무너졌습니다. 회복하기 위해 몇 개월을 보내면서 삶은 리셋되었습니다. 혹자는 젊을 때 예방 백신을 빨리 맞았다고 위로 하지만 꼬리표를 떼기 위한 애씀의 눈물은 몇 바가지는 되었습니다.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부정적 생각부터 뽑아야 했습니다. 쉽게 포기하는 모습, 일을 미루는 태도, 차분하지 못한 행동, 하고 싶은 것만 하려는 욕구,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는 모습 등 나쁜 습성들을 버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뇌는 몸에서 떠나는 것을 바로 허락지 않았습니다. 뼈를 깎는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살아왔던 삶을 분해해야만 했습니다.


노는 만큼 부메랑으로 돌아오다


어릴 때는 다 받아주며 오냐오냐하는 증조부 밑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직장 생활과 대가족 부양, 아버지는 바깥 활동으로 항상 바쁘셔서 부모님과 추억은 많지 않습니다. 고등학교는 도시로 진학하여 일탈을 즐겼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되는대로 살았습니다. 노는 것이 생활이 되어 무엇을 하든 집중하지 않고 건성건성 하는 것이 몸에 배였습니다. 남들이 공부할 때 공부하지 않고, 해야 하는 일은 관심 밖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 힘들게 뒷바라지 해준 등록금과 생활비의 고마움을 모른 채 탕자처럼, 내일이란 없는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군대 다녀오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문제였습니다. 밭을 갈지 않고 길가에 씨를 뿌리며 열매 얻기를 바라는 마음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노는 만큼 시간은 부메랑 되어 뒤늦게 남들보다 몇 배는 노력해야 했습니다. 해야 할 때 하지 않는 것은 기회가 와도 놓치게 됩니다. 뒤늦은 후회뿐입니다.



불량 아빠의 표준


첫째 아이의 울음소리를 잘 듣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아파도 1시간 겨우 옆을 지키다 곯아떨어졌습니다. 아내는 아빠가 맞냐며 타박했습니다. 아이를 맡기면 TV부터 틀었습니다. 책은 조금 읽다가 시체놀이 하자며 누웠습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세심하게 돌보지 못했습니다. 여행을 갈 때도 장소부터 짐을 챙기는 일은 아내 몫이었습니다. 운전과 짐 옮기기는 큰 벼슬이었습니다. 불량 아빠의 표준이었습니다.


가끔씩 가족 여행, 캠핑, 소꿉놀이, 술래잡기, 놀이공원에서 놀아주는 것이 아빠 의무를 한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애착관계는 멀고도 험한 길이었습니다. 평일에는 피곤에 절었고 주말에는 잦은 출근과 만성 피로였던 몸을 건사하기도 버거웠습니다. 오히려 나의 힘듦을 이해해달라며 육아와 직장, 살림과 가정사로 힘겨워하는 아내에게 부담을 주었습니다. 눈치 보느라 아내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느라 아내의 짐은 몇 배로 무거워졌지만 저는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쳤던 터라 불쑥 던진 말로 상처도 주었습니다. 아빠로서 육아 분담은 성실하지 않은 채 우왕좌왕하며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초5, 중2가 된 딸들(5년 전 사진)

문제의 원인은 나에게서


모든 문제의 원인은 있었습니다. 저에 관심이 온통 밖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직장과 관계가 우선이었고, 가정과 육아는 뒷전이었습니다. 에너지를 밖에서 찾다가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고 살았습니다.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모래 위에다 집을 짓기 위해 발버둥 쳤습니다. 아내는 그런 내가 안타까웠는지 여러 차례 눈물로 호소하였습니다. "아이들 어릴 때 금방 지나갈 테니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라고". "제발 집으로 돌아오라고" 그때는 아내의 말의 의미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몸과 마음이 아파 멈추게 될 때 비로소 마음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남을 위한 삶, 남에 맞추는 삶, 밖에서 에너지를 얻는 것을 멈춰. 타인의 인정보다 스스로를 인정해주라고"


내면을 가꾸지 않은 채 외면만 신경 쓰는 저를 보았습니다. 몸은 씻지 않은 채 일시적인 향수를 뿌리며 냄새를 제거하며 살았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모른 채 자신을 다그치며 주제를 몰랐습니다. 부족함을 채우지 않고 나아지려는 어리석음이 있었습니다. 변화는 먼저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깨닫는데서 시작함을 배웠습니다. 바꾸어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바로 저였습니다. 새롭게 태어나고 싶었습니다. 자기 계발 전문가로부터 짧은 시간에 효과적인 것은 책과 사람, 환경을 바꾸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자기 계발 모임 참여, 독서인과 교류하며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드라마 마니아인 아내와 의논하여 거실 TV를 치웠습니다. 책장 구입 후 아동서적과 읽을 책들로 시나브로 채워갔습니다. 매월 지출되는 모임 회비도 정리하고 저녁 약속은 최소화하였습니다. 아낀 돈과 시간을 나와 가족에게 투자했습니다. 가랑비에도 옷이 젖는 것처럼 변화는 조금씩 우리 가족에게 스며들었습니다.



적토성산,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첫째는 중2가 되어 사춘기를 슬기롭게 보내는 중이며, 둘째는 5학년이 되어 사춘기에 접어드려 합니다. 책을 가까이 한 이후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신앙, 둘째는 자존감, 셋째는 독서습관입니다. 세 가지 기둥을 세우면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습니다. 좋은 아빠의 정의는 다를 테지만 요즘 생각하는 좋은 아빠는 친구 같은 아빠, 소통하는 아빠라고 생각합니다. 첫째와 가끔씩 고민을 얘기합니다. "라테는 말이야" 대신에 "너 때는 어때"라며 아이의 말을 들어주려 합니다. 부쩍 커버린 아이를 보며 도울 일을 찾습니다. 둘째는 아직까지 아빠 바라기입니다. 밀당 고수인 둘째의 요구에는 언제라도 넘어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가족들은 떨어져 있을 때는 만나는 시간을 그리워하며 각자 위치에서 열심히 삽니다. 같이 있는 주말 시간은 밀도 있게 보내며 사랑을 키워 갑니다. 주말부부로서 서로의 부족함은 감싸주며 돕는 베필로 응원해줍니다.


목표 있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방향성이 있기에 걸어갈 수 있습니다. 천천히 가도 괜찮습니다. 흔들릴 때마다 목표는 이정표가 되어 안내해 줍니다. 나를 위한 삶에서 우리를 위한 삶을 꿈꿉니다. 선한 영향력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소망합니다. 가족과 이웃에게 좋은 것을 서로 나누면 아이들이 더 행복한 세상이 될 겁니다.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도록 부지런히 읽고 써야겠습니다. 친구 같은 아빠, 설레는 남편이 될 수 있도록. 한 문장이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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