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발레 시어터 수석무용수 서희는 발레를 비인간적인 무용이라고 말했습니다. 발레리나는 늘 고통 속에서 아침을 맞이하니까요. 몸이 아프지 않으면 오히려 훈련을 게을리 한 건 아닌가 의문을 품는 나날들이었죠. 그들의 몸은 아름다움에 비례해 만신창이가 됩니다. <백영옥,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중에서>
아름다움에 감춰진 진실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2시간 스트레칭을 합니다. 아침 대신 커피를 한 잔 마신 뒤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발레단으로 출근해 연습을 하고, 점심으로는 샌드위치, 평소 오후 여섯 시 반까지 연습을 하고 공연 준비를 할 때는 밤 열한 시까지 춤을 추는 밋밋하고 단조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
일과는 단순하고 지루하게 보입니다. 세계적 발레리나 강수진 씨의 일상이었습니다.
연습을 거르지 않기 위해 신혼여행조차 마다했던 그녀의 모습에서 발레를 대하는 정성을 봅니다. 고통을 친구처럼 여기며 산다는 발레리나, 그녀의 뼈 마디는 굵었고 굳은살은 크게 박혀있습니다. 예쁜다는 말보다 징그럽다는 말이 어울립니다. 고통의 흔적이 오롯이 새겨져 있기에 보는 이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발레 슈즈 속에 감춰진 발은 땀과 눈물로 닳고 깎인 아름다운 훈장이었습니다.
결핍, 꾸준함의 원천
하루 한편 글쓰기 중입니다. 습관으로 체화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10대엔 농구, 20대는 당구와 게임, 30대 후반엔 책, 40대는 여행과 사진을 사랑했던 것처럼 해보자는 맘으로 도전합니다. 집밥에 항상 만족할 수 없듯 글을 생산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제한된 시공간에서 나름 최선을 한다지만 완숙미는 늘 아쉽습니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면 축적만큼 안목이 생깁니다. 경험 감각을 가지게 됩니다. 자기 계발서를 탐독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기승전'실천', 인풋만큼 아웃풋을 해야 자기 것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중 독서 완성은 글쓰기라는 말이 운동하면 건강에 좋다는 말처럼 공허하게 들렸습니다.
2014년 12월 29일, 10년 후 작가가 되겠다고 메모해 두었습니다. 그러나 쓰고 싶다는 욕망과 쓰고 있다는 실천은 동쪽에서 서쪽만큼 멀었습니다. 막혔던 물꼬가 터지는 계기는 글을 썼던 사람과의 만남이었습니다. 행동하게 만드는 책을 만나고, 문인협회 회원의 조언 덕분에 멈춰있는 심장이 다시 뛰었습니다.
길이 없는 숲은 바닥을 살피며 풀숲을 해치고 천천히 걸어야 합니다. 한 번 걸어서는 길이 되지 않습니다. 길이 만드는 것처럼 머릿속에 글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주로 빛나는 문장, 소소한 깨달음, 자연 관찰, 시 감상, 책 후기, 노래 가사, 미술 작품, 대화 나눔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다음에 쓸까라며 핑곗거리는 차고 넘칩니다. 눈을 감습니다. "난 용두사미가 아니야" 해야 할 일을 무엇하나 진득하게 하지 못했던 지난날이 떠오릅니다.
40대가 되고부터 목표를 정하면 조금씩, 천천히 하는 편입니다. 못하는 날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오늘은 못했네. 내일은 꼭 하자"라며 스스로 다독입니다. 더 이상 "왜 그것밖에 안돼. 그래서 무엇을 하겠어"라며 몰아붙이지 않습니다. 꾸준함이 쌓이고 있으니까요. 가지 않는 길은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습니다, 발걸음을 움직여야 합니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삶 속에서 하루라는 작은 점을 찍습니다. 들숨처럼 소재를 찾고 날숨처럼 글을 씁니다.
네이버 이미지 모셔옴
그림 전체가 점으로 채워지지 않는 점묘화를 봅니다. 여백이 있기에 촘촘한 점이 돋보입니다. 듬성듬성 점을 찍었던
지난 삶, 왜 점을 찍어야 하는지 모르면서 지냈습니다. 남은 공간이 많으니 디자인할 곳도 그만큼 많습니다.
인생이라는 경기에서 지든 이기든 후회 없이 뛰어봐야 하니까요. 전반전까지 침대축구를 했으니 후반전은 전술을 바꾸어 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