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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티 정문선 Jul 13. 2020

[책 리뷰] '라틴어 수업'을 읽고  

 줄탁동시와 같은 마음으로 전하는 따뜻한 위로  

저자는 누구나 가지 않는 길을 묵묵히 걸어간 동아시아 최초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라는 이색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2010년부터 서강대에서 라틴어 수업을 강의한 것이 예상외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은 6년 동안 강의 내용을 28개의 테마로 나누어 따뜻하고 담담하게 풀어냈다. 생경한 라틴어를 접하였다기보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인문학 수업을 듣는 기분이었다.       


저자가 라틴어 강의를 한 이유는 “라틴어에 대해 흥미를 심어주고 라틴어를 통해 사고체계의 틀을 만들어 주는 데 있으며, 학생들의 머릿속에 책장을 하나씩 만들어 주는 것” “학문한다는 것은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앎의 창으로 인간의 삶을 바라보며 좀 더 나은 관점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공부란 단순히 지식을 머릿속에 넣고 아는 것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절제하고, 가치 있는 일의 우선순위를 구분할 줄 알고, 시간을 관리하는 등 공부를 통해 자기 자신을 연마하는 것. 그것은 누군가 나에게 불어넣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움을 찾아 나서야 하는 길로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해서 남 주는’  그런 공부를 지향한다."
             <2016년 채널예스와 인터뷰 중>


라틴어는 어떤 언어인가? 고대 로마 제국의 언어였던 라틴어는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언어다. 문법이 굉장히 복잡하여 로마 제국 시대에도 문맹률이 높았다고 한다. 그러나 조직적이고 수학적인 언어로 습득하다 보면 암기법, 공부에 대한 접근법이 생겨 체계적인 사고를 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라틴어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수평성을 가지고 있어 로마인들의 사고와 태도의 근간이 되었다고 추측한다. 

그렇다면 로마 제국이 멸망했음에도 라틴어를 배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로마 제국의 사상과 문화, 법과 제도는 서양 문명의 기저에 깊은 영향을 주어서다. 라틴어는 그 시대상을 반영하고 로마제국의 행정과 법률 체계를 그대로 물려받은 가톨릭 교회의 공식 언어다. 더군다나 유럽의 고등학생들에게는 그저 죽은 과거의 언어가 아니라 우리의 수능 영어나 국어에 해당할 정도로 비중이 높은 과목이기 때문에 비록 언어로 사용되지 않아도 계속 살아있는 것이다. 저자는 복잡하고 어려운 라틴어를 이해하게 되면 유럽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다양한 언어 이해뿐만 아니라 지식을 구조화하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강의 첫 시간에 수업을 짧게 마치면서 중간고사 과제로 ‘나의 인생에 대하여’를 A4 1장 분량으로 제출하라고 한다. 그리고 잉여시간은 운동장으로 나가 봄기운 흩날리는 아지랑이를 보라고 한다. 공부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의 아지랑이를 보는 일이며, 보잘것없는 아지랑이와 같은 마음의 현상도 들어다 보라고 권한다. 경험치에서 나온 따뜻한 제안이다. 사색과 관찰의 힘을 체득해서다.


몇 년 전부터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담는 취미가 생겼다.

꽃과 길, 일출과 일몰, 장소와 문장을 담으며 짧은 글과 함께 모아 두었다. 어느 순간, 관찰은 사색이란 숙성을 통해 글로 연결되었다.


앞으로만 가는 것이 최고인 때가 있었다. 그러나 잘못된 방향에 따른 과욕은 부작용들을 낳았다. 자동차는 속도라는 가속페달에 멈춤이라는 브레이크가 있어 안전이 보장된다. 아픈 기억들은 몸과 마음의 브레이크를 장착하는 전화위복의 과정이기도 했음을 배웠다.

우리는 왜 일을 할까? 삶의 의미와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임에도 일이 삶의 목적인 것처럼 살고 있지는 않는가? 성과에만 익숙한 사람들은 자연의 변화 같은 작은 일상의 즐거움을 찾고 누리기가 어렵다. 한가로운 시간을 만들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관찰하듯이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관찰합니다. 다만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못할 뿐이죠. 특히 자신의 단점에 대해서는 더 모르는 척합니다. 자신의 약점과 맞서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좀 더 객관적으로 알고 싶었다. 매일 일상을 기록하며 6개월이 지나자 축적된 기록들은 나에 대해 말해 주고 있었다. 30대까지는 나의 부족함을 환경에서 찾았다. 특히 부모님에 대한 원망으로 표출했다. 나의 결핍을 외부에서 찾았으니 올바른 해결책은 될 수 없었다. 덩치만 커버린 어린아이처럼 내 입장에서만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를 내게서 찾으니 덜 비겁해졌다. 몇 년 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남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으며 세상의 기준에 맞추는 삶을 살아서다. 실력과 내면의 힘을 기르는데 게을러서다. 그것에 대한 반성으로 책을 읽기는 했지만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는 것처럼 확신이 없는 몸부림이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장점이고 단점인가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성찰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곁가지를 뻗어나가야 한다는 것이죠. 내 안의 땅을 단단히 다지고 뿌리를 잘 내리고 나면 가지가 있는 것은 언제든 자라기 마련입니다.”

캄캄한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느껴지는 문장들을 보며 위안을 얻었다. 나에 대해 알고 조언하는 선배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타인의 시선과 기준에 맞추는 삶은 정처 없이 떠다니는 부평초와 같다. 물이 휩쓸린 채로 살게 되어 결국에는 정체성도 흔들린다. 나에 집중하며 꾸준히 나아갈 때 삶을 주도적으로 살 수 있다. 저자는 누구도 가보지 않는 길을 개척 가면서 많은 어려움과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갔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수 있는 이정표가 되었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얽혔던 생각들이 정리되고 마음 한편에 뭉클한 무언가가 생기게 된다. 틈틈이 나오는 라틴어 해설과 철학, 종교적 설명은 배경지식이 부족한 터라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책을 차근차근 읽다 보면 학문을 하는 이유, 일을 하는 이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묻게 된다.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해서 마주해야 하는 필수 질문들이다. 


세상에는 각종 정보들이 넘쳐난다. 정보의 바다에 살고 있으면서도 필요한 정보만을 선별하는 것은 어려운 시대다. 라틴어 수업이라는 낚싯줄을 통해 지금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건져 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저자가 학생에게 했던 조언이 나에게도 크게 다가오는 것은 사람을 향하고 나누려 하는 그의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꽃피는 시기가 다르고, 저마다의 걸음걸이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당장 노력에 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내가 언제 꽃 피울지 미리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미리 알지 못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저 그때가 찾아올 때까지, 돌에 정으로 글씨를 새기듯 매일의 일을 조금씩 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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