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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티 정문선 Sep 25. 2022

[시 감상] 만약에 내가

지금 헛되이 사는 것이 되지 않도록


   만약에 내가

                        (에밀리 디킨슨)


만약에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만약에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수 있다면

혹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혹은 기진맥진 지친 울새 한 마리를

제 둥지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 지금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만약이란 가정은 하지 못한 것, 했던 선택에 대한 후회일 경우가 많다. 언제부턴가 '덜 후회하는 삶을 살자'를 자주 되뇐다. 다음을 말하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섣부른 판단과 지레짐작은 줄이고 상대의 입장을 헤아린다. "다 알겠지"라는

근거 없는 확신은 경계한다. 사소한 오해만 줄여도 불필요한 감정소비를 줄일 수 있다.


랠프 왈도 에머슨은 성공이란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놓고 떠나는 것.

이 땅에 잠시 머물다 감으로써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이라 했다. 어쩌면 어른이란 나에서 우리로 커져가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로 인해 주변에 웃을 일이 많아지고, 분위기가 좋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은 맘 같지 않다. 나를 지키기도 버거운 일상, 무한 반복되는 지루함속에서 남을 배려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고 해야 할 숙제가 쌓인 곳에서 주도권을 갖기란 보통 노력으론 힘들다. 스스로 기대를 낮추고 손품과 발품을 팔며 더 고민할 수밖에.


엊그제 우연히 구두 수선하시는 분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지나들리는 기타 소리가 예사롭지 않아서다.


"기타 소리멈췄습니다. 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잠시 감상해도 될까요"


"누구 앞에서 연주가 부끄럽습니다. 큰 기대는 마세요"


몇 곡을 들으니 그분의 인생이 궁금했다. 음률이 있는 이야기에 눈물로 화답했다. 음악으로 쏟아 난 외로운 외침이었다. 돈이 없어 중학교를 가지 못한 현실, 들고양이처럼 방황했던 청소년기, 음악에 미쳐 건강을 잃었던 20대, 가장의 무게에 꿈을 포기했던 삶,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위해 자식을 뒷바라지했던 마음, 최고의 자리에서 기타를 그만두고 다른 길을 걷는 자녀 이야기... 그리고 몇 년간 공황장애를 겪으면서 생애 끈을 놓지 않으신다는 말씀이 파란만장한 감동의 드라마였다.


기타를 벗 삼아 얼마나 많은 연습과 눈물이 필요했는지 상상할 뿐이다. 가난과 애정결핍을 물려주지 않으려 지난한 삶을 치열하게 살았던 그분의 모습에서 부모라는 자리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시간과 정성이 빚어낸 아름다움은 오래간다.

로비에 전시된 겹문양 청자를 보며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장인의 수십 년의 정성과 노력, 더 나아가 새로운 영역을 만든 삶에 숙연해지기도 했다.


우리는 각자 삶을 빚는 장인이다. 무엇을 남길지가 다를 뿐이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놓아버리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기타 소리에 멈추고, 길가의 민들레에 눈을 맞출 수 있는 지금이 소중하다.


힘든 중에도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돌아간다. 희망을 노래하는 그들이 있기에 세상은 덜 삭막한 게 아닐까. 사막에 오아시스처럼.


만약에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헛되이 살고 있지는 않다는 시인의 고백이 공명되면 좋겠다. 나와 당신에게도.

#시 감상#에밀리 디킨슨#만약에 내가#성공#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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