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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티 정문선 Sep 23. 2022

[시 감상] '혼자서'와 '꽃자리'

시 두 편이 주는 잔잔한 울림을 마주합니다.



       혼자서

                    (나태주)


두 셋이서 피어 있는 꽃보다

오직 혼자서 피어있는 꽃이

더 당당하고 아름다울 때 있다


너 오늘 혼자 외롭게

꽃으로 서 있음을 너무 힘들어 하지 말아라.


  

    꽃자리

                (구상)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엮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함께 피어 있는 꽃보다 홀로 핀 꽃에 눈이 갑니다.  나태주 시인도 혼자 핀 꽃을 주목했나 봅니다. 삶이란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 할 때가 많으니까요.  외롭게 피어 있는 모습에 마음이 쓰입니다. 꽃은 바람을 탓하지 않습니다. 자리에서 존재를 나타낼 뿐입니다.


구상 시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우리가 앉은 자리가 가시방석이라 해도 그 자리가 꽃자리라고 합니다. 쉽게 동의되지가 않습니다. 현실은 어떤가요. 불편한 자리, 피하고 싶은 순간이 훨씬 많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투쟁하며 살고 있으니까요.


시인은 묻습니다. 내가 지은 감옥 속에 살고 있지 않느냐고. 서로의 쇠사슬과 동아줄에 매여 있지 않느냐고. 예리한 지적입니다. 내가 선택했고 감당할 몫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주변을 보면 표정 없는 사람, 어깨가 무거운 사람이 많습니다. 각자 맡은 책임과 역할이 있으니까요.


최근 함께 일하는 후배의 말수가 부쩍 줄었습니다. 새로운 환경과 업무에 적응하느라 자다가 자주 깬다고 했습니다. 공무원 경력이 십 수년이 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을 잘한다는 소리는 못 듣더라도 묵묵히 내 몫은 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야 하니까요. 물끄러미 않아있는 후배의 뒷모습을 보니 몇 년 전 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녁에 약속 있는가. 같이 하세"

"약속은 없는데요"

"뭐 먹고 싶은 거 있는가"

"실은 요즘 입맛이 없어 당기는 것도 없습니다"

"그래. 장소는 내가 정할게"


제육볶음과 김치찌개에 소주를 따라주며 후배의 마음에 초점을 맞췄다. 홀로 섬처럼 떨어져 있었던 후배는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힘든 순간마다 누군가가 눈길을 준다면, 관심을 가진다면 덜 힘들다는 걸 훌륭한 선배들로부터 배웠다. 상대의 말을 들어주기만 해도 심리적 부담이 줄어든다. 사실 공감은 상대의 마음에 내 마음을 포개는 것이다.


10년으로 돌아가 좌충우돌하며 넘어졌던 이야기, 몸을 돌보지 못해 가족에게 미안했던 얘기 등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에 미소꽃이 피었다.

두 편을 후배에게 보내야겠다.


"넌 잘하고 있고, 멋지게 피어날 거라고"


#시감상#나태주#구상시인#혼자사#꽃자리#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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