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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티 정문선 Sep 09. 2022

[일상 관찰] 어떤 순간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잠시 멈춤입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두려움도 밀려온다. 쏟아지는 장대비는 잠시 피하는 게 좋다. 숨을 고르며 때를 기다린다. 발 빠른 대응과 스마트한 일처리도 최소 투입이 있어야 가능하다. 인풋 없이 아웃풋을 하려니 비상 사이렌만 머리에서 윙윙거린다. 숨 가쁘게 달려온 25일, 해야 하는 일은 쌓여가고 제출 기한은 릴레이로 여유를 주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은 뒷전으로 밀렸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지만 무차별적으로 골대로 날아오는 공을 쳐내기도 버겁다. 하프라인을 넘기까지 쉽지 않다. 결국 한정된 시간에 급하고 중요한 일부터 지워나갈 수밖에 없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업무 시간 이외로 분산하며 여유시간까지 할애한다. 저녁 있는 삶, 당연한 주말과 휴식은 그리움이 되었다. 감내해야 할 때, 넘어야 할 과정임을 알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2013년 가을, 바쁘다. 숨이 차다. 단거리 경주하듯 매일 그렇게 지나다가 탈이 났다. 충분한 수면, 규칙적인 생활, 좋은 음식, 절한 운동이 건강의 기본임은 이론일 뿐이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거대한 일의 중압감은 수면을 삼키며 신진대사를 흩트려트렸다. 평범한 일상은 기도가 되었고 일의 무게에 짓눌려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회되는 일 중 가족들에 미안함이 제일 컸다. 급속 충전으로 하루를 버티고 간편식으로 식사를 대체하며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삶의 결과는 처참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갈아 넣는 모습이 아무렇지 않는다는 게 의아했다.


직장인의 비애를 온몸으로 맞이하는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무언가를 포기하든, 관점을 바꾸든, 실력을 키우든 헤쳐가야 할 일이다. 심리적 태풍에 내상을 입었지만 피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많은 비용이 들고서야 나의 실상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다양한 풍파에  맞서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처절하게 학습했다. 그래서 일까. 내성이 생겨선지 덜 당황하며 페이스를 조절한다.


뼈아픈 경험 죽비가 되어


10분 필사, 틈틈 책 읽기, 점심때 여유롭게 걷기거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에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 글을 쓰는 것도 감사요, 잠깐 햇살을 만나는 것도 기쁨이 된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몸의 신호를 의식한다. 사도 대충 때우지 않는다. 어진 후 얻게 된 브레이크는 언제라도 멈출 수 있는 감각이 되었다. 한동한 무리했던 몸에 많이 미안했다. 냉온탕에 몸을 담그며 뭉쳐있는 근육을 풀었다. 절대 시간에 쫓겨 비록 하루를 견디지만 스스로 선택한 길임에 후회는 없다. 성실과 끈기로 벅뚜벅 밖에는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한 달 만에 아내와 교외로 나들이를 했다. 곤한 일상을 나누며 같은 곳을 바라본다. 매일 밤이 오듯 현실은 버겁다. 그러나 아침도 오는 자연의 가르침을 잊지 않는다.


둘만의 식사는 특별한 이벤트가 되었다. 내 몸의 모든 감각은 카메라처럼 미세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 아내의 표정과 눈빛에 집중한다.


"나만 힘든가, 당신도 힘들지, 주변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더라. 건강 잘 챙기면서 하소"


"어쩜 인생은 7할은 힘듦이고 3할은 즐거움 일지 몰라. 이번 주도 고생했네. 당신 덕분에 일에 매진할 수 있었어."


우리는 서로에게 충전기다. 마음을 연결하고 눈빛을 읽어가며 견뎌냈을 삶의 무게를 헤아린다.  어떤 순간에도 희망은 있다. 도종환의 폐허 이후를 떠올리며 잠시 눈을 감는다.


  

       폐허 이후

                                            (도종환)


사막에서도 저를 버리지 않는 풀들이 있고

모든 것이 불타버린 숲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나무가 있다

화산재에 덮이고 용암에 녹은 산기슭에도

살아서 재를 털며 돌아오는 벌레와 짐승이 있다

내가 나를 버리는 거기 아무도 없지만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나 함께 있는 것들이 있다

돌무더기에 덮여 메말라버린 골짜기에

다시 물이 고이고 물줄기를 만들어 흘러간다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는다면


#일상관찰#도종환#폐어이후#부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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