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작가는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후 왜곡된 민족사에서 개인이 처한 한계에 이르기까지 민족의 아픔을 아우르는 소설 등을 집필했다.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비롯하여 장단편 소설과 산문집, 위인전을 발표했다. 그의 작품은 여러 나라에 번역되었고, 영화, 오페라, 뮤지컬, 만화 등 다양한 콘텐츠로 재생산되고 있다.
이 책은 50년 등단을 기념하여 쓴 독자와의 대화집으로 다양한 질문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답변이자 자신이 걸어왔던 인생살이를 담백하게 담아내었다. 평생 동안 자신을 갈고닦으며 살았던 작가의 문학관, 인생관, 역사관, 사회관, 교육관, 문학론 등을 집약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마치 구도자처럼 수행하는 마음으로 고독을 벗 삼고 시대의 아픔을 마주하면서 현실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탐구했다. 소설이라는 매개체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방향 제시의 몸부림이었다. ‘속도’와 ‘편리’가 지배하는 세상의 조류에 글쓰기라는 ‘아날로그 무기’로 고군분투하는 삶은 안쓰러움과 존경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1부 들어가는 글
1부 ‘문학과 인생, 인생과 문학’에서는 독자들의 궁금증에 대해 먼저 공감한다. 분석과 진단을 통해 현실적인 처방을 내놓는다. 작가로서의 재능, 소설이 존재하는 이유, 작가가 지켜야 할 수칙, 신념을 가진 다는 것, 노력과 절실함, 완벽을 향한 퇴고, 의미 담아 제목 짓는 법, 체력 관리 노하우, 문학하는 이유, 집필 계획의 중요성, 가치관 및 작가의 고뇌 등에 대해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작가 지망생에게는 울림 있는 가르침으로, 일반 독자에게는 삶을 돌아보도록 환기시키는 여운을 준다.
2부 들어가는 글
2부는 한국 현대사 3부작인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의 작품의 세계에 대한 질문에 답한다. 40대 초반에 시작하여 20년 동안 매일 8시간 이상씩 30매 이상의 원고지를 채우는 작업은 지난한 고통의 연속이었으리라. 군부독재의 서슬 퍼런 칼날에서도 목숨을 걸고 작업하였던 작가의 결기는 많은 시민들이 한국의 근현대사를 균형 있게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부귀와 명예와 타협하지 않는 외길이었기에 한국문학의 거두로 존경받지 않았을까?
‘아리랑’은 전국 최대의 곡장이었던 김제 만경평야를 배경으로 일제 수탈과 강제 징용, 소작 쟁이, 독립운동 등 구한말부터 해방기까지 역사와 농민들의 애환을 그린다. 전라북도,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 러시아의 사할린과 중앙아시아 벌판, 상해의 임시정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무대에서 민초들의 고충과 애환을 담았다.
‘태백산맥’은 여순반란사건이 종결된 직후부터 휴전협정에 이르기까지 소작농인 좌익세력과 토착지주(자본가)를 중심으로 우익 세력 사이의 갈등을 다루었다. 전쟁으로 통치 권력의 성격이 수시로 바뀌는 혼돈의 역사 속에서 좌우 갈등과 아픔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노선 선택은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시대적인 것이다. 갖가지 모순이 중첩되는 현실과 그것을 해소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인물들의 노력과 좌절을 통해 작가의 지향점을 제시한다. 지금도 친북좌파라는 낡은 프레임으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여 이익을 얻으려는 세력들이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강’에서는 1960년 4.19부터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까지의 배경으로 분단 이후 경제 발전을 이룩해 내었지만 절대 모순의 시대 상황과 반성을 담았다. 폭력적인 정치권력에 의해 자행된 탄압, 독재 권력과 기업인들이 결탁하여 산업화가 되어가며 어둡고 불편한 진실들을 들추어내며 민중의 성장을 담았다.
3부 들어가는 글
3부 ‘문학과 사회, 사회와 문학’에서는 대내외적인 사회문제와 갈등, 한국의 미래, 절망과 희망 사이 등 묵직하고 커다란 담론에 대한 작가의 해석과 당부를 담았다. “인공지능, 4차 산업시대에는 먼저 그 정체를 똑바로 응시하며 도구와 수단들이 마치 본질인 것을 경계하라”라고 제안한다. “편리함과 속도감 표피적인 흥미와 말초적인 재미에 대화가 단절되어 서로를 소외시키며 외로움이 가중되어 영혼이 황폐화되고 있다”라며 경고한다. 스마트폰에 현혹되지 말고 책을 읽고 사회문제에 직시하라고 주문한다. 사죄하지 않는 일본, 한반도가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등거리 외교에 있다고 제시한다. 결혼과 출산의 성스러운 자연의 순리를 거부하고 있는 현 세태에는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결국 민족 자멸의 길로 가고 있으니 함께 위기를 극복하자고 촉구한다. 교육문제는 “부모들이 무모하게 경제력과 체력을 탕진하지 말고 자식들 교육은 자식들이 개성과 재능에 따라 스스로 고르는 길을 가게 하고 부모는 보조자 역할을 성심껏 하는 것이 행복을 보장하는 바른 길”이라며 "자식은 소유물이 아니라 개성과 인격을 존중해야 할 고귀한 존재로바라보라"라고 한다.
책을 읽는 동안 삶을 보다 가치 있고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따뜻한 조언들에 마음이 가득 채워졌다. 관심 없이 간과하였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다소 반복적인 내용들이 지루하지 않는 이유도 누구보다도 백성과 나라를 사랑하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져서다.
지금까지 50년 동안 어렵고 힘든 길을 걷게 한 추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고향의 애환, 시대정신의 이해, 소명의식, 혼신의 노력, 자기 절제 및 건강관리, 작가를 응원하는 독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인의 길이 업보라고 생각하며 죽을 만큼 치열하게 전진하는 삶은 정면교사의 가르침으로 전해졌다.
작가를 넘어 많은 사람에게 큰 영향력을 주는 그는 지금 시대의 큰 리더이자 현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정래 작가의 대표 작품인 대하소설 3부작을 더 늦기 전에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