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쓰기 시작한 원고는 생각처럼 쉽게 써지지 않아 애가 탔다. 쓸 내용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결혼 후 긴 세월 동안 난임을 겪으며 쓰디쓴 실패와 자괴감에 시달리면서 보냈던 시간들, 자존심이 떨어질 때로 떨어져 저 밑바닥에 헤엄치던 시절을 간과했다. 기적적인 임신으로 아이를 낳으면서 그 전의 고난과 역경을 보상받고 아픔은 흔적 없이 치유됐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하나를 꺼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줄 쏟아져 나오는 사건들이 어마 무시했다.
애석하게도 그동안 참 괜찮은 척 잘 살아왔다는 사실에 몸서리쳐졌다. 한 꼭지의 한 문장을 써 내려가면서 가슴속에 응어리지고 꾹꾹 눌러 담아 놓은 사건들이 토해내듯이 엎질러져서 다시 긁어모아 정리할 수 없었다. 이런 마음으로 끝까지 원고를 써 내려갈 수 있을까 두려움이 몰려왔지만 다시 엎을 수도 없고 내 업보처럼 느껴졌다. 편하게 내 경험들을 고스란히 담백하게 써 보자고 다독이며 솔직한 경험들을 조금씩 펼쳐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틀에 박힌 '작가란 무조건 글을 잘 써야 한다'라는 관념 속에서 생각이 앞서 내가 쓴 글에대한 믿음이 적었다.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매일 글쓰기로 단단하고 간결하게 전달하려 애썼다. 그것이 쌓이고 단련되어 어느 정도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연습할 수 있었던 곳이 바로 글쓰기를 자유롭게 해주는 블로그와 브런치였다. 그곳에서 나는 이미 작가였고 나의 독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작가답게 써야 한다는 중압감에 '초보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어있어 무조건 "잘" 쓰려고 노력했던 게 문제였다. 글쓰기 책을 여러 권 읽으면서 말하듯이 쓰려고 노력했고 시간의 흐름대로 지루하지 않게 글을 풀어나가려고 애썼다. 또한 책을 읽는 독자 마음을 헤아리며 글을 써 내려갔다. 선호하는 독자층은 정해져 있다 할지라고 내 책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반복적으로 실패를 하는 사람들, 나만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남 탓만 하면서 시도도 하지 않는 나약한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줄 책이다.
누구나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을 겪는다지만 마음의 병이 가장 무섭다고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차리고 그 순간 상황이 되면 벗어나려고 애써야 한다. 내 책을 읽고 나서 희망을 잃고 사는 사람과 흥청망청 미래가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잘 살아내고 있다고 용기를 붇돋워주고 싶었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단 하나도 없다고 이 세상에 태어난 임무는 분명히 있고 내가 잘하는 것이 분명 있다는 깨달았다.
자꾸 타인과 비교하면서 자신을 위기로 몰아세우지 말고 이만하면 잘하고 있다고 나를 꼭 껴안아주자고, 지금도 잘 살아내고 있다고. 절대로 네 잘못이 아니라고 토닥여주고 싶었다.
난임에 관련된 책을 쓰겠다고 말하고 알렸더니 다시 덮을 수도 없었고 주변에 난임부부가 많다며 응원해 주었다. 내가 시작한 일은 내가 끝을 맺어야 일이 끝날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생각처럼 원고는 뜻대로 술술 써지지도 않고 타인들이 한 마디씩 거드는 말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벼랑 끝에 서 있는 갈대처럼 휘청거렸다. 나약한 자신을 돌아보며 후회스러웠고 신중하게 선택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떨구며 어떡하나라는 생각이 떨쳐지질 않았다. 운명처럼 내가 해결해야 할 사명 같았다.
책을 써서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나처럼 별 볼 일 없고 나약한 사람도 해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콩심은 데 팥 난다고 해도 믿고 싶을 정도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수백 번, 수천번이 들었어도 포기하지 않았고 성공가능성을 찾아 시도하고 노력했기에 아기를 가질 수 있었다는 희망을 불어넣고 싶었다.
타인에게 손가락질받는 게 처음은 부끄럽고 두렵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살아남기 위해 일부러 삐뚤어질 테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센 여자로 보이려고 노력했다.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게 일부러 인상을 찌푸리고 다녔고 웬만하면 인적이 드문 곳으로만 찾아다녔다. 지름길이 아닌 어둠 컴컴한 비포장길이었다. 매일 달려라 하니처럼 울지 말라고 다독였지만 매번 실패는 나를 물거품으로 흩트려놓았다. 다시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힘들게 했지만 내가 살아가기 위한 방법은 표정을 바꾸는 거였다. 절대 웃지 않고 울지도 않는 표정으로 살아냈었다.
신기하게도 글쓰기는 내 마음을 치유하는 명약이 되었다.
미워하고 분노하고 치를 떨게 던 사람들, 감정들을 모두 털어낼 수 있었다. 평생을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글로 내 아픔을 드러내면서 내 아픔이 아니었다. 글쓰기로 마음을 치유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면에 숨어있는 아픈 나를 치료하는 데에는 글쓰기뿐이었다.
내일모레 투고를 앞두고 가슴이 설렌다. 처음 해보는 것이 가장 두렵고 가슴 떨리다고 했던가. 맞다.백번 맞는 말이었다. 결혼식장에서 웨딩드레스를 입는 것도 떨렸고, 아이를 처음 맞이했던 분만실에서도 떨렸다. 어찌 보면 가슴 떨리게 숨 막히는 일은 무수히도 많았는데 어찌하여 익숙해지지 않는 걸까.
그만큼 살아온 세월에 비하면 전문가처럼 익숙하고 노련하게 하고 있는 업무는 감정이 섞인 일이 아니었다.
컴퓨터를 가르치는 일, 독서법을 가르치는 일, 포토샵이나 그래픽 프로그램을 알려주는 일들은 일적으로는 괜찮았지만 새로운 사람들이 바뀔 때마다 설렜고 두려움이 따라왔다.
난 분명 감정적인 동물이고 mbti로 F가 분명했다. 아무리 감정형이든, 사고형이든 이런 순간은 비슷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