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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위로도 필요 없다

by 민선미

“아직 이야?”라며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안부를 묻는다. 도대체 나에게 관심이 있는 친구인지 분간이 안 가도록 매번 똑같은 질문을 던지는 의도를 모르겠다. 딱 한 번만 물어보면 좋겠는데 한 번도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오랫동안 모임을 쉬었던 터라 이번에는 모임에 꼭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동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모임을 미뤘는데 이제는 그럴 빌미조차 없었다. 친한 친구가 급하게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며 결혼할 신랑을 소개해주는 자리였다. 약속장소로 나가기 전부터 어떤 질문을 던져도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상대가 묻지 않으면 절대 먼저 속사정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맹세하고 또 맹세했다.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첫 만남에서 지나친 배려로 상대에게 종종 더 심한 상처를 준다는 것을 알았다.



“왜 아직 아기가 없어요? 결혼식을 치른 지 꽤 흘렀다고 들었는데. 둘이서만 너무 즐기면서 사는 거 아닌가요?” 끊임없는 질문에 어디서 말을 끊어야 할지 난감했다. 나를 아프게 하는 말들이었다.

“우리 부부는 의도치 않은 속도위반으로 마땅치 않게 결혼을 서두르게 됐는데.” 준비되지 않은 임신이 너무 황당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속도위반”이라는 말이 예전에는 부끄러워 숨기느라 바빴다면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 자랑하는 게 느껴져 듣기가 영 껄끄러웠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일인데 그날은 유난히 거슬렸다. 난임 때문에 친한 친구의 임신 소식도 속 좁게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하는 옹졸한 나를 보며 괴물과 다를 바 없는 삶이 느껴지면서 메마른 설움이 복받쳤다. 위선도 용기도 둘 다 자신 없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사정은 달랐겠지만, 친구라면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는 사이라 믿었던 게 내 발등을 찍었다. 내심 친구 남편이 쏟아낸 무심함이 담긴 말들이 끝내 서운했다. 결혼 한지 수년이 지나도 임신을 되지 않아 속 끓이는 걸 알면서도 묻는 의도를 모르겠다. 혼전임신으로 무작정 서두르는 친구의 결혼이 그저 부럽기만 했다. 내 속사정은 이랬다. 배란 유도를 아무리 시도해도 임신에 거듭 실패하자 큰마음을 먹고 일반 산부인과 다니다가 불임 클리닉을 여러 곳을 알아봤다. 상처가 깊어진 나는 내 상황을 구구절절 친구들에게 말하기 싫어 연락을 조금씩 피했다.



친구도 내가 즐겁고 행복할 때 곁에 머물러주었지만 속상하고 임신 실패로 애가 탈 때마다 진심으로 위로해 주는 친구는 없었다. 어쩌면 자신에게 났던 화를 참지 못해, 주변 친구들을 불편하게 하는 일들이 터지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지면서 멀어졌다. 내가 혼란스럽고 힘들 때는 예쁜 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즐겁지 않았다. 매달 임신에 실패하며 세상에 우리 부부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 같았다. 가족도 친구도 위로한답시고 더 깊은 상처만 남겼다. 차라리 친한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서 사는 이 타지가 더 편하게 느껴졌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갈수록 삐뚤어져 가고 있었다.





저녁 끼니 준비로 쫄래쫄래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를 가다가도 아는 사람이 저만치에서 걸어오면 마주치는 게 싫어서 집으로 줄행랑쳐 돌아왔다. 그들에게 거짓 웃음도 보여주기 싫었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내 모습에 더 구역질 나고 역겨웠다. 형식적인 안부 전화도 신물이 났고 나의 불행을 즐기는 거처럼 속마음이 점점 꼬여 같다. 아무 뜻도 없이 허니문 베이비를 가졌다며 자랑하는 친구가 부러워 너그럽지 못한 행동도 유치했다. 그냥 가식적으로 말해도 될 ‘임신을 축하해’라는 말도 좀생이가 되어 말하는 것조차 싫어서 연락을 피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몰려왔다. 시어머님이 해주신 한약이 안 맞았는지 복통으로 시달리다 결국에는 입원했다. 졸지에 의사 선생님 앞에서 시대에 맞지 않는 무식한 사람이 되었다. 어떻게 요즘 같은 시대에 진맥도 하지 않고, 아무리 녹용이 들어간 보약이라 한들 의심하지 않고 먹을 수 있냐며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시어머님이 즐겨 다니는 단골 한약방이라고 강조하시는 바람에 티끌만큼도 의심하지 않았다. 임신할 몸이니 조금이라도 임신에 보탬이 될까 싶어 누구보다 정성 들여 먹었다고 의사에게 고해성사했다.



어머님이 지어온 보약은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었다. 똑같은 상자에 표시하나 다르지 않고 다섯 식구가 먹을 5 상자였다. 거듭 비싸게 사 왔다면서 하루도 빼먹지 말고 먹어야 한다며 신신당부했다. 어머님이 건네준 보약이 마치 나를 살려줄 구원자 같았다. 재빠르게 두 상자를 챙겨서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라는 인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져와서 냉장고 야채칸에 신줏단지 모시듯 넣어두었다. 다음날부터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정성 들여 먹었다. 남편은 잦은 술자리를 핑계로 들쭉날쭉 먹으면 효과 없으니 술 안 마실 때 먹겠다며 보약 먹는 일을 하염없이 뒤로 미뤘다. 어머님은 아기가 안 생기는 게 나 때문이라 의심한 게 분명했다. 저녁마다 보약은 잘 먹고 있는지 확인 전화까지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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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약을 열심히 꼬박꼬박 챙겨 먹은 결과는 예상치도 못한 약물 부작용이 나타났다. 아랫배 통증이 반복돼서 임신인가 반가웠다가 통증이 심해져 잠시 맹장인가 의심했다. 하지만 찾아간 병원에서 피검사 결과 간 수치가 너무 높아 생명에 위중할 수 있다며 당장 입원을 시켰다. 미련한 곰도 아니고 어떻게 참았냐는 말에 얼굴은 웃고 있지만, 속마음은 엉엉 울었다. 2주 동안 병원 신세를 지면서 땅속으로 숨고 싶었다. 얼굴색은 점점 병자처럼 노랗게 착색되면서 눈동자 흰 부위까지 노랗게 황달 증상이 올라왔다. 종합병원에 안과가 없어 외래로 택시를 타고 갔는데 놀랍게도 황달이 맞았다. 그 뒤로 황달이 옮기는 전염병처럼 사람들을 바라볼 수 없었다. 황달은 술, 담배 많이 먹어 간에 문제가 생긴 사람이 걸린다고 생각했는데 젊은 여자가 걸렸다며 불쌍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뉴스에서만 듣던 무서운 약물 부작용이었다.



친정아버지는 내 소식을 전해 듣고 단숨에 달려와 펄쩍 뛰시면서 노하셨다. 결혼 후 처음으로 만나는 어색하기 그지없는 사돈네 만남이었다. 아버지는 억누르고 참았던 말씀을 냉소적으로 건네셨다. ‘내 딸아이가 아기를 못 가지는 게 누구 탓도 아닌데 이러실 거면 딸을 데리고 가겠다’라고 하셨다. 딸을 잡을 작정이지 이렇게 하면 누가 살아남겠냐고 말끝을 흐리셨다.


안 그래도 어색한 사돈 관계는 더 서먹해졌다. 아기는 축복받아야 하는 선물인데 이렇게 아기를 낳아야 하나 싶었다. 양가 어르신들의 관심과 친구들의 관심은 전혀 도움이 안 되었다. 그저 스트레스만 쌓이게 하고 더 멀리 숨고만 싶었다. 남편도 최대한 본가에 가지 말라고 했고 둘만의 시간을 가지려 했다. 힘든 시기일수록 똘똘 뭉쳐서 부정적인 생각이나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려 했다. 주위에서 시선을 받을수록 나는 집 밖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고 자신을 스스로 비틀고 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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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만나는 임산부만 봐도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이 올라와 분노했다. 어떤 위로도 내 마음에 전달되지 않았다. 누군가 위로한답시고 말을 건네면 쌈닭이 되어 꼬투리 잡기 시작했다. 점점 괴물이 되어갔다. 주위에 있는 가족뿐 아이라 남편과 친구가 온전한 피해자였다. 남편은 한배를 탄 동반자임에도 불구하고 나만 피해자인 거처럼 징징거렸다. 그도 나처럼 힘들고 고통을 감내하고 있단 생각이 잠시 들다가도 원망이 몰려왔다.

한없이 이기적인 모습으로 밑바닥이 어디인지 모르고 내려가려고 작정한 것처럼 무너졌다. 차라리 돈 주고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다. 내 고통을 알아달라고 버둥거리는 것보다 이렇게도 해도 저렇게 해도 안 되니 미치고 돌아버릴 거 같았다. 이미 토해낸 말들은 주워 담을 수 없고 스스로 폐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매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시를 세우는 고슴도치처럼 내게 관심조차 두지 말라고 경계했다.


매달 찾아오는 생리는 임신에 실패했다는 증거였고, 기대한 만큼 실망이 크듯 퇴근하고 집에 오는 남편에게 화풀이는 반복되었다. 매달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변함없는 불청객이 미웠다. 주기적으로 미친 듯 날뛰는 망아지가 따로 없었다. 카페에 올라오는 임신증상을 매일 들여다보고 상상해서 그런지 모든 증상이 나의 증상이고, 생각만 해도 곧 임신이 된 거 같았다. 혼자 기뻐하며 아랫배의 통증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즐기고 있었다. 말하면 복이 달아날까 내 아기를 누가 훔쳐 갈까 조심스러워 임산부처럼 조심조심 행동한다. 며칠 후 즐거운 증상놀이는 끝났음을 알리는 생리가 시작되어야 제자리로 정신이 돌아온다. 반복되는 일인데도 늘 처음처럼 설렜고 매달 찾아오는 규칙적인 생리가 야속하다.


누가 이기는지 내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절대 지지치 않겠다고 다짐했던 마음은 어디로 사라지고 엉엉 소리 내어 울며 남편에게 또 짐을 주었다. 아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같은 마음일 텐데. 나만 위대한 일을 하는 듯 어린양 했다. 나만 아프다고 끊임없이 봐 달라고 졸랐다. 바깥일 하는 사람에게 못한 짓을 저지르는 철없는 아내였다.



이미지 출처 : 언플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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