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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순간들

난임 부부로 견뎌온 날들

by 민선미

그동안 살아오면서 아름다웠던 순간과 행복했던 순간, 기뻤던 순간, 경탄스러웠던 순간, 참으로 많은 순간들을 보내며 살아왔다. 철학자들이 매일 산책하면서 사색하듯 지천에 보이는 것이 모두 꽃밭인 봄이라 더 생명력이 이글이글 불타오른다. 먼 산을 바라보니 어느덧 연두연두하던 나무의 새싹 이파리들이 짙은 녹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지나온 세월들을 유유히 더듬어보았다. 마침내 지나왔던 순간들이 하나씩 스멀스멀 기어올라 왔다.


어쩜 이렇게 쉽게 망각하고 새하얗게 잊히는지, 너무 행복해서 그 행복이 달아날까 불안감이 올라온다. 의미 있는 일이라고 전력질주하여 달렸던 일도 다음 날이면 백지가 되니 부끄러웠다. 나만 그런 건지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건지 이유라도 알게 되면 조금 나아지려나.


왜 우리는 망각하는가?


지금 이 순간에 행복인데 굳이 과거로 여행을 떠나고 있다니 서글픔이 안개처럼 밀려왔다. 왜 지금 마주하는 순간들(현재)에게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시간이 흘러 흘러 과거를 더듬어야 '아~ 그때가 행복했던 거로구나'라고 느끼면서 후회한다.


행복은 각자의 감정이라 그렇다.


매일 똑같이 떠오르는 태양에 행복하고 감사할 수 있지만 어떤 날은 그 태양이 지겹도록 미울 수도 있는 데는 그날의 감정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감정과 기분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기분은 하루 종일도 지속될 수 있지만, 감정은 몇 분, 몇 초 간격으로 있다가 사라진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날로 돌아가기 위해 기념일들을 떠올려봤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순백색 웨딩드레스를 입었던 결혼식 날이다. 특별한 날은 쉽게 잊히지 않아서일까. 그날의 주인공으로서 빛나는 날이었다. 하얀 턱시도를 입은 남편 덕분에 우리는 한 쌍의 백조같이 우아했다.


어찌 보면 아름다웠던 순간들보다 내게는 경탄스러웠던 순간이 떠오르는데 벌써 16년 전의 일이다. 결혼하고 임신이 안 돼서 속상해하고 마음 아파하며 세상과 담을 높이 쌓아 거리를 두고 속세를 떠난 듯 우물 안의 개구리로 살았다. 철두철미하게 내 마음을 숨기고 살아야만 내가 간신히 숨을 쉴 수 있었기에 겉과 속이 다른 열대과일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다 보니 얼음보다 차갑게 무미건조한 사람으로 변해갔다.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워 그렇게 좋아하던 외출도, 아이쇼핑도 못하며 집 밖을 나가지 않는 은둔형으로 살던 때도 있었다. 스스로 살기 위해 어두운 곳으로 파고 들어가는 야행성인 고슴도치처럼 미리 가시를 세우고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임신을 위한 공부만 하며 보내는 시간이 허무하고 아까워 취미반으로 수채화반에 들어갔다. 여성회관이라서 수채화를 신청하신 분들은 모두 나보다는 나이가 많아서 일단 다녀보기로 했다. 그림에 진심인 그들은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에 또래 친구들보다 편안했다. 그렇게 오전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하루를 알차게 보낸다기보다는 흘러가게 내버려 두었다.


반복되는 임신 실패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처럼 찢겨 이제 그만 두기로 약속했다. 남편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은 분명 있다면서, 그만 포기하자고 그만 욕심내고 우리 둘이 행복하게 살자고 손가락 건 지 몇 달이 지나지도 않았다. 포기하겠다는 말을 백 번도 넘게 해 놓고, 그 포기가 되지 않아 미련이 남아 또 병원 앞에 서 있는 나였다. 미쳤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어도 내가 미치지 않았기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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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을 쉬었다가 난임병원에 저장해 둔 냉동배아가 생각이 났다. 다시는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남편에게 잔머리를 써야 했다. 일단 병원에 전화를 걸어 냉동배아 이식 절차를 물었다. 공공칠 작전을 펼치듯 나는 냉동배아가 아까워 남편에게 말도 하지 않고 서울로 올라갈 결심을 했다. 남편이 없어도 되었기에 자연배란 시기에 맞춰 나만 병원에 가면 된다고 생각하니 아주 마음이 편안했다. 여자가 남자보다는 덜 수치스러운 일인데도 남자들은 병원에 갈 즈음되면 더 앙칼지게 짜증을 수천 배, 수만 배는 낸다. 지금도 남편의 이글이글 타오르던 분노의 눈빛은 잊히지 않았다.


다부진 마음이 아닌 여행 가는 것처럼 긴 여정인 서울로 병원에 다녔다. 다행히 남편이 바쁜 시기라서 내게 관심이 소홀했던 시기였다. 그 당시 마음이 편안했는지 생각지도 못하게 이식한 냉동배아가 착상이 되어 임신이 되었다. 남편은 황당한 표정이 역력했어도 그 뒤는 무척 기뻐 날뛰었다. '된다, 된다, 된다'라는 욕심을 버린 게 한 몫했다. 냉동배아 이식이 처음이라 별기대가 없었다. 임신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 볼을 꼬집어 보라고 소리쳤다. 아직도 그날을 잊히지 않고 생생하다.


내 생애에 그 어떤 순간보다 행복하고, 아름답고, 경탄스러웠던 순간은 그토록 기다리던 아이를 내 품에 안았을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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