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월 ○일 새벽 6시 38분. 유도분만을 시작하고 18시간 만에 금쪽같은 내 새끼를 품 안에 안았다. 주르륵 눈물이 차올라서 아기 얼굴이 잘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았다. 간호사가 왼쪽 가슴 위에 올려준 아이는 초록색 수건으로 감긴 채 자지러지면서 울어 재꼈다. 아기 울음소리가 쩌렁쩌렁 귓전에 맴도니 안심됐다. 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나서야 진짜로 엄마가 되었다는 게 믿어졌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의사 선생님은 아기를 받자마자 산모가 제일 궁금해하는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처럼 손가락과 발가락을 확인하고 정상이라고 일러줬다. 그래도 미덥지 않은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 한숨을 돌렸다. 문득 아기를 만져보고 싶어 손을 내밀었다가 거인처럼 보이는 커다란 손으로 만지면 으스러질까 그만뒀다. 대신 염소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꿈 동아~ 태어나줘서 고마워, 그동안 좁은 곳에서 지내느라 힘들었지?”라고 말했다. 아주 짧은 순간 내 가슴 위에 머물렀는데 온기가 느껴졌다. 간호사는 다급하게 신생아실로 가서 다양한 검사를 받아야 한다면서 데려갔다.
꿈 동이는 엄마, 아빠 만나러 늦게 오더니 40주를 채우고 분만예정일이 지나도 세상 밖으로 나올 기미를 안 보였다. 초조하게 일주일을 보내며 의사는 아기가 너무 커지면 자연분만이 어려워질 수 있으니, 유도분만을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사이에 자연적으로 진통이 찾아오기를 기도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아기는 뱃속에서 잘 놀았다. 진통을 앞당기는 방법으로 아파트 15층 계단 오르기와 오리걸음도 걸었으나 소용없었다. 분명 커뮤니티 카페에서 막달이 되면 아기도 나올 준비를 하느라 아래쪽으로 내려온다고 했는데 꿈 동이는 천하태평이었다.
시험관아기 시술로 임신에 성공한 것을 초진부터 알고 계셨던 선생님은 우리가 불안해할까 봐 몇 번이고 안심하라고 했다. 아기가 나오려고 신호를 보내는 진통은 시도 때도 없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작된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막달 검사를 하면서 출산 가방은 진즉에 싸두었다. 남편은 저녁 회식을 하는 날에도 절대 술을 마시지 않았고, 어디를 가더라도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않고 24시간을 대기했다. 신호가 오면 당장 병원에 달려갈 작정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분만예정일도 되기 전에 진통이 오지도 않았고, 미리 양수가 터지지도 않았다. 내가 유도 분만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왜냐하면 그동안 자연 분만하겠다고 열심히 산모 요가를 다녔는데 잘못하면 제왕절개를 해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유도 분만은 촉진제를 일부러 투여해서 자궁을 일부러 수축시켜서 진통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촉진제를 투여하고도 진통이 오지 않으면 선택할 겨를도 없이 무조건 제왕절개를 할 수밖에 없다고 들었다. 유도 분만하러 산부인과로 가는 차 안에서 제발 자연적으로 진통이 걸리기를 기도했었다. 초산이라 진통이 쉽게 오지 않을 거라 예상했는데 정말 진통은 시간이 멈춘 듯이 더뎠다.
가족 분만실에서 진통을 기다리면서 옆방의 산모는 나보다 늦게 입원하고도 곧바로 순풍 분만을 하고 옮겨가는 산모가 여럿이었다. 참으로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다고 애를 잘 낳는 것도 부러웠다. 임신이 뜻대로 안 되듯이 분만도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 하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계속 진통이 오지 않자, 간호사는 가만히 누워만 있지 말고 운동실로 가서 짐볼 운동과 오리걸음을 하는 게 좋다고 재촉했다. 아랫배는 더 아래도 내려와서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찌릿찌릿해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아기를 빨리 만나보고 싶어서 낑낑대면서 움직였다.
첫 아이를 기다린 만큼 분만예정일이 다가오자 깊은 잠을 못 잤다. 아기가 방광을 눌러서 밤사이에도 수시로 깼다. 분만이 무섭지 않다고 큰소리쳤지만 나날이 두려움이 몰려왔다. 새벽마다 왼쪽 다리에 쥐가 나서 ‘으악’ 소리 질러도 남편은 코 골며 잤다. 흔들어 깨워서 왼쪽 왼쪽을 가리키면 남편은 눈을 뜨지도 않고서 성의 없이 다리를 주물러주면서 “됐어? 이제 됐지?”라고 말했다. “어, 약간 풀렸어”라고 말하기가 무섭게 등을 휙 돌리고 자면 서운했다.
만삭의 몸으로 양말 신기도 불편했고, 침대에서 누웠다가 일어나기도 얼마나 거추장스러운지 아이를 낳는 일이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잠귀가 밝은 남편은 임신하면 잠을 많이 잔다는데 왜 그렇게 새벽에 화장실을 자주 가냐며 성화였다. 임신해서 아이를 뱃속에 품고 몸의 변화를 전혀 못 느끼는 남편에게 이해해 달라고 할 수 없었다. 평생을 살아도 남자인 남편은 모를 경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