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편지 이야기(릴케)

by 민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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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편지는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편지를 쓴 거 같아요. 카푸스는 릴케가 추천해 주는 야콥슨의 책을 구해 읽으며 예술에 대한 견해을 얘기했나봐요. 하지만 릴케는 카푸스의 태도를 높이 샀고 세 번째 편지에서도 몇 가지 당부하는 내용이 있었어요. 아주 천천히 정성 가득한 편지에요.



운명이라는 것은 한없이 다정한 손길에 의해 이끌려 각각의 실들이 다른 실과 나란히 놓이기도 하고 수백의 다른 실들과 함께 엮여지기도 하는 경이로운 직물과 같다고 해요.



순간 '운명이라는 것'에 대해서 멈춤했어요.



갑자기 김연자의 《아모르파티》가 떠오르네요.

노래 도입부분 이에요.


"산다는 게 다 그런거지

누구나 빈손으로와 소설같은

한 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고 살지

자신에게 실망 하지마

모든걸 잘 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랴 아모르파티……"




인생은 혼자서 사는 게 아니고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라고 올 때는 혼자 왔지만 색다른 여러 종류의 실들과 얽혀서 살아가듯 사는 것 자체가 예술인 거 같아요. 우와~~



인생을 실에 비교하다니. 실은 홀로는 쓰일 수 없는데 다른 실과 어우러지면 옷이 되기도 하고 커튼이 되기도 하고 이불이 되기도 하네요. 정말 놀라워요.



사물을 바라보는 눈은
더욱 좋아지고
단순해질 것이며,
인생에 대한 믿음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삶은
더욱 행복해지고
더욱 위대해질 것입니다.

_세 번째 편지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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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가 카푸스에게 당부하는 메시지가 있어요.

미학적인 비평의 글들은 되도록 읽지 마십시오.

그런 종류의 글들은 모두 감각하게 각질화되어 생동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편파적인 견해이거나, 아니면 교활한 말장난일 뿐입니다. 저는 미학적이란 뜻을 찾아봤어요.




*미학적 : 기리스로 '지각한다' 또는 감각적이다'에서 유래하는 미학적이란 말은 독일 미학의 창조자인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오직 직관에 의하여 개념적 사유의 매기없이 직접 얻게 되는 쾌]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이것을 자연이나 예술의 미와 숭고를 포괄해서 적용한 이후로 중요한 용어가 되었다.




예술작품이란 한없이 고독한 존재이며, 비평만큼 예술작품에 다가갈 수 없는 것도 없습니다.


사랑만이 예술작품을 포착할 수 있으며 올바르게 대할 수 있습니다.


논쟁의 글이나 비평 또는 서문을 대할 때면 당신은 늘 당신 자신과 당신의 느낌이 옳다고 생각하십시오. 당신의 생각이 주위로부터 아무러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조용히 제 스스로 자라나도록 두십시오.

모든 변화는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하며, 무엇에 의해 강요되거나 재촉당해서도 안된다고 해요.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재촉하는 일이나 강요하는 일을 강자라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마구마구 횡포를 부린 적이 있었네요.





"모든 것은 산(産)달이 되도록
가슴속에서 잉태하였다가
분만하는 것이다."


아이를 낳듯 내 가슴속 깊은 곳의 내면에서 뻗쳐 나온다는 뜻이었어요. 나를 거치지 않고 사유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다른 이의 미학적인 비평글을 보지 말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미학적인 글들을 가려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야해요.



릴케는 겸손과 인내심을 갖고 새로운 명로함이 탄생하는 시간을 기다리라고 해요. 그것이 바로 예술가답게 사는 거라고요.


너무 급하지도 않게 내 마음속에 맘껏 머물가 가게 생각 자체를 내버려 둬야 할 거 같아요. 빠른 선택 보다는 알아도 모르는척 한번 깊이 생각하고 말할 수 있을 때가 바로 예술가답게 사는 거라니 그동안은 살아온 저의 인생이 부끄러워지네요. 그래도 이렇게 책을 통해서 제가 저지르는 잘못도 반성하게 되고 앞으로 어떻게 예술가답게 살아야하는지 생각하네 되는 편지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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