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상편 재수술을 앞두고
나는 가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말리는 쪽보다 쉽지 않은 쪽에 더 마음이 기운다는 사실을 느꼈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길인데,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그 길이 궁금해졌다.
이유를 묻기보다 발걸음이 먼저 향했다.
말릴수록 마음이 움직이는 날이면, 나는 내 안에 사는 청개구리를 떠올린다.
그러고 보니 청개구리는 멀리 있지 않았다. 고집 센 누군가를 가리키는 말인 줄 알았는데, 돌아보면 나 역시 그런 순간을 반복하며 살아왔다. 반대로 걷고 싶어지는 마음은 미숙함이라기보다 내 선택으로 살아보고 싶은 작은 의지인지도 모른다.
청개구리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가끔은 나도 그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오늘 익상편 재수술을 앞두고 있다. 진료를 보고 수술 날짜를 잡은 지 벌써 열흘이나 지났다. 한 번 받았던 수술이라 날짜가 다가올수록 두려움보다는 괜찮다고, 느긋하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자꾸만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눈동자를 계속 의식하게 된다.
앞을 볼 수 있다는 감사함을 나는 너무 당연하게 여겨왔다.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는 뉴스를 보면서도 그저 안타깝다고만 생각했지, 그 일이 나에게 닥칠 수도 있다는 상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의사의 말을 듣고 나니 겁이 났다. 간단하고 흔한 수술이지만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큰일 날 수도 있다는 말이 귓속에서 계속 맴돈다.
이상하게도 작년부터 나는 재활병원에 출근하듯 다니고 있다. 실비보험이 있다 해도 병원비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건강한 노후를 보내고 싶은 마음에 치료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물리치료사가 알려준 스트레칭을 따라 하며 몸을 먼저 챙기려 애썼다. 그런데 마음과는 다르게 오십견이 거의 나아갈 즈음 허리에 전기가 오듯 “찌릿”하더니 꼼짝할 수 없었다. 구부정한 자세로 서 있는 나를 보고 남편은 장난인 줄 알았다가 겨우 나를 부축해 침대에 눕혔다. 그 후 몇 주 동안 앉아도, 서도, 누워도 아팠다. 다행히 디스크는 아니었지만 부풀어 오른 흔적이 있다며 쉬어야 한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 그 말을 남편에게 전하는 일이 괜히 난감했다. 왜냐면 불보듯 한 소리 들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누가 보면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쉬어야 한다니 웃음이 나왔다. 나는 엄살이 심한 사람도 아닌데, 작년부터 올해까지 고통과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눈에도 이상이 생겼다. 통증은 없었지만 주변에서 눈동자에 하얀 것이 보인다고 병원에 가보라 했다. 사실 매일 거울을 보는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저 무시했을 뿐이다. 예전에 병을 키운 뒤 병원에 가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워했는데, 지금 내가 그 모습이다. 나 자신에게 화가 나고 속상하다.
처음 익상편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다짐했었다. 하지만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스마트폰을 줄이고, 컴퓨터와 책도 멀리하고, 자외선 차단을 위해 보호안경과 선글라스를 꼭 쓰라는 말을 들었지만 좋아서 하던 일들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새벽 독서를 그만두라는 말을 들은 것은 4년 전이었다. 나는 그 말을 무시한 채 눈치를 보며 읽고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런 나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은 자기계발에 몰두하는 나를 못마땅해하면서도 겉으로는 강의도 하고 글도 쓰라고 말했다. 그때 알게 되었다. 평소에는 나를 존중하는 듯 보여도 큰 일이 닥치면 ‘나’라는 존재는 쉽게 뒤로 밀려난다는 사실을.
내 인생은 누가 책임져 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지 못할 때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낸다. 그것이 스트레스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고 속상한 마음이 조금은 위로된다. 누군가는 수술을 앞두고도 글을 쓰느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은 걸 어찌하겠는가. 오늘 새벽에도 독서모임에 나가 수술 잘 받고 오겠다고 인사했다.
가족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그곳에서 나는 다정한 마음을 분명히 느낀다.
당분간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렇게 복잡한 마음을 끄적여 둔다. 두려움과 후회와 다짐이 뒤섞여 있지만, 이 또한 지금의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