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낮, 대전 소제동의 치앙마이방콕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는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괜히 마음이 먼저 풀어졌다. 서두를 이유가 없는 시간. 누가 재촉하지 않아도 되는 낮. 그런 날이었다.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은 돌담길옆에 대니무숲이 여행의 시작을 알렸다 들어서자마자 천장에 달린 따뜻한 색의 조명 아래, 나무 테이블들이 간격을 두고 놓여 있었다.
오래된 듯한 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공간은 정돈되어 있으면서도 어딘가 느슨했다. 그 느슨함이 좋았다. 잘 꾸며진 곳인데도, 굳이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가 좋았다.
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소제동 골목은 사람의 발걸음이 거의 없었고, 젖은 바닥 위로 잔잔한 빗소리만 쌓이고 있었다.
그 풍경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문득 이곳이 익숙한 도시가 아니라 어디 먼 나라의 작은 마을처럼 느껴졌다.
잠깐, 여행을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계획하지 않았던 여행.
음식이 나오고 나서는 더 그랬다. 노란 커리 소스가 넉넉하게 담긴 접시, 바삭하게 튀겨진 식감, 향신료의 은은한 향이 한 번에 올라왔다. 한 입 먹는 순간, 입 안에서 여러 맛이 천천히 퍼졌다. 자극적이지 않은데도 충분히 깊고, 익숙하지 않은데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평소보다 훨씬 천천히 먹고 있었다.
누가 일부러 속도를 늦추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그때 문득 떠올랐다. 스무 해 전 다녀왔던 태국. 그곳에서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바빴다. 더 많이 보고 싶어서, 더 많은 곳을 가고 싶어서, 시간에 쫓기듯 움직이던 여행자였다.
맛을 느끼기보다 ‘먹었다’는 사실에 더 가까웠던 순간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세월이 흘러 시선 자체가 달라졌다.
한 접시의 음식 앞에서 멈추고, 한 입의 온도를 느끼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상하게도 그때보다 지금 이 한 끼가 더 ‘여행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떠나지 않았는데도,
비가 내리는 골목 하나와 낯선 향의 음식 한 접시, 그리고 아무것도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다른 곳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함께한 시간은 음식만큼이나 오래 남았다.
그날 우리는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같은 음식을 나누었지만, 각자의 시간과 기억을 조금씩 꺼내 놓고 있었다.
처음엔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따뜻한 음식이 오가고, 웃음이 몇 번 쌓이자 대화의 결도 조금씩 깊어졌다.
문득, 밥을 함께 먹을수록 친해진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 말은 단순한 경험담이 아니라, 시간을 나누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것을 그날 알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가끔은 같은 순간을 겪은 사람처럼 웃었다. 그렇게 조금씩, 서로의 하루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돌아보면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시간이었다.
마치 각자의 삶이라는 일기장 한 페이지에,
서로의 이름을 조용히 적어 넣은 것처럼.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쯤, 나는 분명 대전에 있었지만 마음 한편은 어딘가를 다녀온 사람처럼 가벼워져 있었다.
우리는 종종 여행을 멀리에서 찾지만,
어쩌면 여행은 거리보다 ‘속도’에 더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날의 나는, 소제동의 작은 식당에서 잠시 태국을 살았다. 그리고 아마, 그와 비슷한 순간을 당신도 한 번쯤은 살아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