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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준 Jun 21. 2024

심장을 풀무질하던 그 미친 불꽃의 위력

등산용 석유스토브


‘스토브(Stove)’라는 본명보다는 ‘버너’라는 예명이 더 입에 감긴다. 아니, 이렇게 교양 떨며 말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평소 하던 대로 ‘석유 빠나’라고 해야만 할 것 같다. 어릴 적 정말 친했던 불알친구를 길에서 만난다면 이름보다도 “야! 이 자식 너 개똥아!”라고 불러야 할 것처럼 말이다. ‘석유 빠나’는 산악인들의 정서로 보면 그런 존재다. 적어도 ‘코펠밥’에 대해 이야기 좀 하자면 이 미친 불꽃을 빼놓곤 그 대화에 낄 자리가 없다.


화력(火力)은 말 그대로 불의 힘이다. 석유 버너는 버너 가문의 형제들 중 화력이 가장 세다. 메틸알코올로 예열이 꼭 필요해 불붙기까진 여간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지만 한번 붙기만 하면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 폭발적인 광음을 뿜어낸다. 그래서 삼발이에 올려놓은 밥이 타건 말건, 찌개가 끓어 넘치건 말건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처럼 앞만 보고 달린다.


또한 불조절이 어렵다. 아니, 조절이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불을 붙이던가 끄던가 둘 중 하나만 있다. ‘나의 사전에 불 조절이란 없다. 쌀이여! 더 이상 까맣게 타고 싶지 않다면 그만 내려오시던가.’ 이거다. 버너계의 ‘또라이’가 따로 없다. 그래서 석유버너로 밥 좀 지어봤다면, 그래 산좀 다녔다고 인정한다.


그 야생마 같은 석유 버너를 달래어 밥 짓기를 위해 산 사람들은 저마다의 꼼수며 노하우를 접목시켰다. 가령 뜸이 들만할 때를 기다려 코펠 채로 뚜껑을 덮은 뒤 뒤집어 놓거나(이 때문에 뚜껑은 불에 닿아도 좋은 프라이팬 용도의 가장 큰 뚜껑이어야 했다), 삼발이 위에 돌을 괴어 버너와의 거리를 떼어놓거나, 어쨌든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한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속에 우린 커왔다.


이런 ‘더러운 성질’에도 불구하고 석유 버너가 한때 각광받은 까닭은 그 연료를 쉽게 구할 수 있고, 조작이 간편해 고장 날 일도 적으며 변화무쌍한 산의 환경 속에서도 늘 한결같이 제구실을 해줬기 때문이다. 적어도 훗날 애용된 휘발유 버너처럼 정제 화이트가솔린을 구하기 위해 장비점까지 가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었고, 단지 불 조절의 편리함 때문에 석유 버너 대신 가스버너를 선택할 이유는 없었다.


가령 우리가 ‘밥 산’이라는 이름의 고산을 오르기 위해 원정대원을 선발해야 한다고 치자. 저돌적이고 단순무식하지만 정말 힘도 좋고, 이쑤시개(노즐 뚫는 핀) 하나만 있으면 아무거나 잘 먹는 ‘석유 버너’ 대원과, 힘은 석유 버너 대원과 비슷하지만 입맛이 까다로워 고소에서 따로 먹을거리를 챙겨줘야 하는 ‘휘발유’ 대원, 몸은 유연해 바위는 살랑살랑 잘 올라가지만 추위에 맥을 못 추는 ‘가스’ 대원이 있다면 단연 나는 ‘석유 버너’ 대원과 함께 줄을 묶으리라. 그리고 그건 ‘선행동 후생각’이라는, 크럭스를 넘어가는 법칙과도 닮은 데가 있다. 떨어질 땐 떨어지더라도 한번 엄두는 내봐야겠다는 산꾼의 오기 같은 것.


한때 우리나라를 평정했던 석유 버너는 내수를 넘어 해외 수출까지도 호황을 이뤘다. 1970~80년대를 지나며 출시된 국산 석유버너 브랜드는 200여 종에 달했으며, 이는 당시 경제의 주축이었던 경공업의 발달과도 함께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디에서도 석유 버너를 찾아볼 순 없다. 가끔 중고품 경매에 올라오는 퍼런 녹 묻은 그것들이 전부다. 그럴 때면 꼭 한때 잘 나가던 그였으나 수십 년이 흘러 추레한 모습으로 뒷골목에서 마주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보는 것 같다.


‘석유 버너’에 두들겨 맞은 탄밥, 삼층밥, 모래알처럼 씹히던 설익은 밥도 이제는 산에 없다. 그리고 밥 못했다고 빠따를 치던 선배도, 후배도 없다. 오로지 ‘개인’이 꺼내놓은, 나눠먹기에도 옹색한 ‘햇반’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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