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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현 Jun 03. 2024

고양이 미

호우주의보가 내려지고 비가 쏟아지는 토요일이었다. 8월이 끝나려면 아직 열흘 가까이 남아있었지만 가을로 접어드려는지 생각보다 한기가 돌았다. 그런 날 처음 만났다. 흠뻑 젖은 채로 길 가운데 몸을 동그랗게 말고 앉아 있었다. 쥐방울 만한 하얀 고양이가, 쥐면 한 손에 다 들어올 것 같은 녀석이 무서웠는지 파란 눈만 동그랗게 뜨고 파들 거리고 있었다. 주인이나 어미가 오겠지, 내가 데려가면 찾으러 와서 당황하겠지 하며 애써 외면했었다. 그러고 퇴근길, 다음날 출근길에는 다시 보이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월요일이 휴무일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바닷가 동네를 어슬렁 거리고 집 근처 솔밭을 지나는데 주차된 트럭 밑에서 토요일에 봤던 고양이를 다시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몸을 숙여 고양이를 봤는데 자세히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몸에는 뼈 밖에 없었고 그사이 얼굴은 몰라보게 지저분해져 있었다. 거기서 어떻게 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아이고 미야!!"

수의사님 말로는 개한테 물려서 난 상처고 개가 물고 흔들다 던져서 생긴 혹이라 신다. 이렇게 어리고 작은데 이틀사이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니 마음이 짠했다. 보호소든 시청이든 전화를 해봤지만 결국은 방법이 없었다. 보호자나 입양자를 찾는 공고도 올리고 병원에서도 알아봐 주셨지만 몰골이 몰골이라 데려가겠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집에서 같이 지내는 날 들이 늘어갔다.
처음 일주일은 베란다에 둔 박스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베란다 문을 닫든, 열든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고 그저 놓아둔 밥그릇에 밥을 비우고, 물을 마시고 열심히 똥을 만들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만들어둔 똥을 보고 안심했던 게 기억난다. 고깔이 걸려서 화장실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앞발에서 꼬리까지 똥칠을 해버려 냥빨을 해야 했지만 그래도 멀쩡히 살아 있구나, 별 탈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먹고 만드는데 집중하는 시간을 일주일 가량 가졌을까? 열어둔 문 틈으로 들어와 내 옆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나도 밥그릇과 물그릇을 안으로 들이고 이름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첫날부터 계속 미야라고 부르긴 했다. 어떤 생각이나 의도보다는 그냥 터져 나온 말이라 그렇게 부르는 게 마음에 들긴 했는데 그래도 의미를 부여해주고 싶었다. 앞으로 이름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미' 음을 가진 한자를 뒤지기 시작했다. 흔하디 흔한 '아름다울 미'부터 '작을 미', '교활할 미'까지 아주 다양했는데 나는 '어루만질 미'로 결정을 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이쁨 받고 보살핌 받아야 할 때인데 앞으로는 이런 고생은 하지 말자며, 누군가에게 이쁨 받으며 크라고. 하지만 일주일이 더 지나서 무릎 앞에 픽 쓰러지듯 기대는 미야를 보며 혼자 말을 걸게 됐다.

"나랑 같이 살래? 우리 같이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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