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글쓰기 모임에서 내준 올해 마지막 숙제. 한 때는 거의 매일 들었던,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각해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야 한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세상에 맞서는 대신 맞춰가기로 마음먹은 날부터 '꿈'이라는 단어는 거리가 먼 사이가 되었다. 수능 점수가 아깝다고 전공을 바꾸고, 흘러가다 직업을 선택한 사람이 꿈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민망하다. 마침 올해가 끝나가니 핑계 삼아서 글쓰기를 건너뛸까 봐도 생각했다. 그런데, 마음 깊숙이 숨어있던 뜨거운 무언가 느껴진다. 동시에 뇌리 속에 스쳐 지나가는 한 짤방은 최태성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말한 명언이었다.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대학 시절 좋아했던 공간이 하나 있었다. 몇 십 년 동안 학교 앞에 서점이 없던 것에 충격을 받았던 선배 몇 명이 의기투합하여 만든, 북카페를 겸한 서점이다. 단과대가 너무 커서 과방도 없었고, 동방이 있는 동아리에도 가입한 적 없었다. 그래서일까, 좁은 단칸방 원룸에서 자취를 해야 했던 나에게는 아지트로 삼을만한 따스함이 느껴졌다. 일단 들어가면 먼저 책으로 가득한 지하실을 한번 돌아보면서 구경했다. 대형 서점에서 파는 베스트셀러보다는 주인의 애정이 담긴 소개글과 함께 하는 책에 눈길이 갔다. 그렇게 영업을 당한 날에는 산 책을 들고, 아닐 때는 들고 온 책을 가지고 돌아가 세미나실을 겸하는 좌석에 앉았다.
공간이 주는 분위기는 독특한 풍경을 연출했다. 취업준비, 학회 팀플, 토익 같은 소위 스펙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대신 공간을 채운 것은 저마다 읽고 싶은 책을 읽는 사람들의 고요함. 그리고 대학 생활, 어제 읽은 책과 인생 영화 이야기에 푹 빠진 이들의 대화였다.
그 서점과 비슷한 공간을 만든다는 것이 동사로 말하는 나의 꿈이다. 선배님들이 차린 서점 이외에도 이 꿈을 가지게 된 계기가 하나 더 있다.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친구와 이야기하다 질문을 하나 던졌다. '영화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그는 주저 없이 말했다. 지원금도, 최신 장비도 아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생각하고, 편집하고, 만든 영화를 상영도 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꿈이니까 예산 제약 같은 건 잠시 제쳐두고 상상을 펼친다. 빌딩 숲 사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도시와 멀지도 않게 교통이 좋은 어딘가를 찾는다. 층고가 낮으면 답답하니 최대한 높게, 인테리어는 들여오는 책들이 맡아 줄 것이다. 세미나룸은 너무 폐쇄적이지 않되 누군가 자기가 만든 영화를 틀거나 강의가 필요하면 닫을 수 있도록. 커피값은 악착같이 이윤극대화 식으로 계산하지 않고, 적당히 부담 없는 가격으로.
물론 이런 공간들이 없어서 꿈을 꾸는 건 아니다. 공공에서 제공하는 청년공간, 공유오피스, 심지어 요즘은 개방형 스터디카페도 비슷한 분위기를 내는 것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내가 만들고 싶은 공간과는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다. 공공이 주는 딱딱함도, 기업이 주는 매정함도 원하지 않는다.
최근에 독립출판과 독립서점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 꿈을 한 문장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돈에 얽매이지 않는 크고 넓은 독립서점을 만든다'. 독립서점에 대한 글을 읽다 보면 저 문장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 단어인지 의심스럽긴 하다. 뭐, 불사의 꿈을 꾼 진시황도 있는데. 이 정도는 괜찮겠지.
최근에 공주 산속에 위치한 근사한 카페를 다녀왔다. 당연히 돈이 넘치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장님이 직접 운영하는 유튜브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링크) '100% 대출받고 직접 설계한 카페'를 운영하는 것에 대한 적나라한 현실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사장님의 말에는 힘이 가득했고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는 사장님이 멋있다. 그렇다고 따라서 당장 100% 대출을 땡기겠다는 뜻은 아니다. 역시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설사 평생 이루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조금은 다른 형태로라도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