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게임이 좋고, 아는 게임만 하게 된 30대 아재 게이머 이야기
최근 부쩍 글쓰기에 소홀해졌다. 밸런타인데이 맞이 세일로 구매한 디아블로2:레저렉션(이하 디아2) 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 동네 PC방에서 친구들과 함께 지키던 성역을 지금은 홀로 악마들로부터 지켜내고 있다. 아이템을 먹기 위해 그렇게나 잡았던 디아블로 3형제가 그렇게나 반가울 수가 없다. 물론 재회의 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고, 다시금 파밍을 위해 몇 번이고 녀석들을 사냥한다.
사실 얼마 전까지 친구들과 같이 하던 MMORPG가 있었다. 한국 게임의 희망이라고 불리던 로스트아크(이하 로아)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초년생일 때만 하더라도 다들 하루에 몇 시간씩이고 투자했었다. 각자 가정이 생기고 일상이 바빠지면서 점점 접속이 뜸해지더니, 지금은 모두가 사실상 게임을 접은 상태다. 두 게임은 몬스터를 죽이고, 획득한 재화와 아이템으로 캐릭터를 강화시키는 것을 반복한다는 공통점이 있어 멀리서 보면 비슷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실제 플레이하는 입장에서는 많은 것이 다르다. 그리고 그 차이점이 30대 직장인 게이머가 게임을 바꾸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두 게임은 싱글/멀티 기반이라는 차이가 있다. 물론 디아 2는 배틀넷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파티를 맺거나 PK 같은 경쟁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솔로로 플레이하는 PC게임이며, 혼자서 모든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반면 로아는 대부분의 주요 콘텐츠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파티플레이가 필수적이다. 로아와 같은 게임은 MMORPG(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라고 불린다. 이 장르의 재미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내 캐릭터의 강함, 뛰어난 컨트롤 능력을 자랑하면서 사람들과 협력하거나 경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한 마디로 게임이라는 작은 세계에서 남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게임을 '공부'해야 한다는 차이도 있다. 디아 2는 아주 단순한 게임성을 가지고 있다. 정해진 구역을 돌아다니며 적을 물리치는 것이다. 난이도도 쉬운 편이다. 타인과의 경쟁을 추구한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시나리오 자체는 큰 어려움 없이 엔딩을 볼 수 있는 구조다. 반면 로아에서는 끝없이 신규콘텐츠가 추가된다. 그리고 이 콘텐츠들은 대부분 소위 '고인물'유저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새로운 요소를 추가해야 하며, 너무 쉬워서도 안 된다. 단순히 대미지를 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정한 패턴으로 수행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마치 청기백기 게임을 하듯 특정한 행동을 해야 하는데, 아무리 내 캐릭터가 강력하더라도 패턴을 실수하는 순간 공격에 실패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서는 적의 패턴을 공부해야 한다.
사람들을 대하는 것,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하는 것. 과거에는 게임의 흥미를 배가시켰던 이 두 가지 요소가 이제 나에게는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게임을 제대로 하지 않는 일명 '트롤'게이머를 만나는 스트레스, 반대로 나의 실수를 일일이 지적하며 압박을 주는 파티원. 이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게임이 즐겁지가 않았다. 게다가 새로운 콘텐츠들은 외워야 할 패턴이 점점 많아졌다. 게임을 하지 않아도 알아야 할 것이 이젠 너무도 많다. 그런데 또 뭔가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게임이 즐겁기보다는 부담스러워졌다.
나처럼 사회생활의 영역이 넓어짐과 반대로 게임에 할당하는 영역이 줄어든 사람들이 꽤나 많다. 했던 게임만 즐기고, 단순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한때는 그들을 게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업신여기기까지 했다. 그때는 게임이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중요한 일들이 너무 많아졌다. 게임에서까지 내 에너지를 낭비하기 싫어져 버렸다.
모두가 이렇게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주위 사람들이 게임을 대하는 태도가 나처럼 변화하는 경우가 많다. 극단적으로는 모든 게임에서 더 이상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게임불감증'에 빠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더 이상 인생을 게임으로 낭비하지 않게 되어 좋지 않으냐 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취미에 대해 과거와 같은 열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퍽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