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은 먹지만 오늘도 출근> 종결
끝이 없을 것 같은 무더위가 조금씩 선선한 바람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듯이, 그동안 주위를 지켜왔던 익숙한 것들도 하나 둘 씩 곁을 떠나고 있다. 1년 가까이 진행한 심리상담, 3년을 넘께 함께한 요가수업을 마무리했다. PT수업과 프리다이빙도 잠시 내려놓았다.
지금의 나를 규정하는 많은 것들을 떠나 보낸 빈자리에는 곧 찾아올 새로운 생명을 위한 준비로 채워가고 있다. 매일 당근과 커뮤니티, 쇼핑사이트를 둘러보며 이것 저것 물건들을 사다보니 방 하나가 가득 찼다. 넉넉히 창고로 쓰던 방 두개를 하나로 줄이다보니, 남은 방 하나가 마치 자취방 시절마냥 너저분해지는 중이다.
올해 초,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 몇 번의 논의 끝에 결정한 것은 아이가 태어나면 곧 '동반 육아휴직'을 하자는 것이었다. 복직한지 아직 3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다시 휴직을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제 인생의 이정표를 '가족'으로 정했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보다는 가족 계획상 휴직 시기가 적절한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 아무래도 같이 육아휴직을 하면, 할 때는 편하지만 아이를 돌보는 합산기간은 줄어든다. 그러다보니 주위에서는 배우자와 순차적으로 휴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여러가지를 고민한 결과, 1. 양가 부모님들이 멀어서 도움을 온전히 받기 어렵고, 2. 첫 육아를 혼자 전담하는것은 당사자에게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상당히 줄 것이며, 3. 아이에게도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부모와의 애착경험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동시 육아휴직을 결정했다. (솔직히 말해서, 어차피 계획해도 계획대로 안되는게 인생이며, 나중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도 컸다...^^;;) 다행이 지금 근무하는 곳은 육아휴직 같은 제도는 굉장히 잘 갖춰져있고, 제도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완전히 용인되는 분위기였기에 망설임없이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글을 쓰는 지금 36주차이니, 아기가 언제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시기다. 주위를 봐도 그렇고, 아이가 태어나면 많은 것들이 바뀔 것이다. 당연하게 여기던 조용함과 여유가 소중해질 것이라며 육아 선배님들이 겁을 주기도 하고, 그렇지만 아이가 주는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말도 덧붙인다.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또 다시 가지 않은 길을 성큼 성큼 내닫아야만 한다.
어느 정신과 선생님의 유튜브에서 엄마 아빠는 무의식적으로 아이에게 '자신이 결핍된 것'을 채울 수 있도록 한다며, 자신도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활발하지 못했기에 아이들에게 농구, 축구, 태권도 등 체육활동을 엄청 시킨다는 내용의 영상을 보았다.
나의 경우에는 아마도, 아이가 기댈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할 것 같다. 삶의 많은 것들을 혼자서 감당하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기대기'만' 하도록 키워도 안되겠지만 말이다. 그것이 아직도 마음 속 어딘가에서 홀로 상처를 보듬고 있을 내면아이를 치료하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고.
아이가 태어나면 점점 '국룰'화 되어가고 있는 조리원과, 나라가 지원해주는 산후도우미 기간을 지나고 본격적으로 육아가 시작될 것이다. 회사에서의 '나'를 다시 한 번 내려놓고 새로운 양육자로서의 페르소나를 잡기 위해 몸과 마음이 정신 없는 시기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회사원'의 정체성으로 적어간 이번 메거진은 그만 이쯤에서 마무리하려 한다.
반쯤 방치하다시피 드문드문 써나갔지만, 그래도 글을 쓸때마다 좋아요와 댓글로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