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하게, 그러나 조금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지금까지 시도했던 여러 가지 내용들은 '사용자'관점에서 이미 익숙한 것들을 '공급자'관점으로 적용한 것이다. 성과와 칭찬을 스스로 깎아내릴 필요까지는 없지만, 어쨌든 플랫폼과 콘텐츠에 대한 이해가 어렵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제 이러한 어드밴티지가 적용되지 않는 것에 도전을 할 시기가 왔다. '틱톡'으로 인해 촉발된 '숏폼'영상에 대한 이해였다.
솔직히 틱톡을 처음 보고, 이걸 공공공기관에서는 적용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초창기 숏폼 영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춤을 따라 하거나 웃긴 장면을 연출한 것이었다. 주된 사용층도 10대였고, 15초라는 시간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나의 부정적인 인식과는 별개로, 여러 플랫폼들이 틱톡을 따라잡기 위해 숏폼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릴스'가, 유튜브에서는 '숏츠'가 생겼다. 우리가 운영하는 채널에 변화가 생겼으니, 이를 분석하고 활용하는 것이 이제 필수가 되어 버렸다.
고민을 거듭하던 어느 날 , 유튜브 데이터를 살펴보다가 굉장히 특이한 상황을 발견했다. 영상 하나가 좋아요도, 댓글도 하나 없는데 하루 만에 7000의 조회수가 나온 것이다. 영상의 정체를 보고는 더욱 당황했다. 무려 6년 전에 찍었던, 직원들이 빵 만들기 봉사활동을 갔던 영상이었다. 영상 편집은 하나도 되어있지 않았다. 단순한 기록용 영상인데, '빵'이라는 키워드 덕분에 알고리즘에게 선택을 받은 것이다. 물론 쇼츠 초창기라 조건에 해당하는 영상이 거의 없어서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쇼츠의 가능성을 확인했으니, 도전을 할 수밖에 없다. 그 도전은, 지금까지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관점에서 시작해야 했다. 이전에 한 번도 접하지 못했었고, 심지어 우호적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있는 콘텐츠였기에 본능이 아닌 머리로 이해를 해야 했다. 어찌 보면 업무를 맡고 나서 진짜 'SNS를 공부'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해야 할 공부이기도 하다. 싸이월드가 페이스북에 자리를 내주고, 젊은 세대는 인스타그램에 넘어갔듯, 언제 시대의 흐름이 숏폼으로 넘어갈지 모를 일이다. 그 흐름에 빠르게 올라탄 자에게 알고리즘은 훌륭한 선점효과를 제공하기도 하고 말이다.
우선은 숏츠를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갓 20대가 된 친척들에게 연락해서 틱톡과 숏폼 영상에 대해 물어봤다. 대부분의 친척 동생들은 '어릴 때 틱톡을 보기는 했으나, 스무 살을 기점으로 점점 손이 가지 않는다'는 의견이었다. 아무래도 10대를 겨냥한 콘텐츠들이 많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유치하다는 생각이 큰 것 같았다.
다음으로는 유튜버들이 숏폼 콘텐츠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살펴보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유튜버들이 숏츠를 그다지 활용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숏츠 전문 유튜버까지 있을 정도고, 대부분의 채널들이 숏츠 채널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지만, 처음의 분위기는 확실히 달랐다. 나름의 이유를 분석한 영상을 하나 보았는데, 수십만 회의 조회수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기존 영상에 비해 수익이 현저히 적거나 심지어 없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 점은 오히려 수익과 무관한 공공기관 홍보 콘텐츠를 제작하는 관점에서는 경쟁자가 적다는 긍정적인 소식이었다.
'유치하다' '경쟁이 적다' '시간이 짧다' 등의 키워드를 정리하면서 콘텐츠 방향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선, 1분도 되지 않는 영상에 정보를 많이 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지금의 콘텐츠 타깃인 20대 후반~30대 초반보다는 타깃 연령층을 낮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보다도 더 쉽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로 방향성을 잡았다. 때마침 시대의 화두는 'MZ'라는 새로운 세대에 대한 이해였다. <90년생이 온다>를 필두로 꼰대 담론, MZ세대와의 융합 등 조직문화에 대한 관심이 폭증하고 있었고, 회사 내부 차원에서도 인사팀을 중심으로 강하게 조직문화 개선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조직문화 개선'이라는 소재를 활용하고, 간단한 콩트와 캠페인으로 진행하는 방향을 잡았다. 구체적으로는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세대 차이로 인한 갈등을 콩트식으로 풀고, 이를 바꾸자는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시 퇴근'과 관련해서는 6시가 되어도 집을 가지 않는 상사와, 눈치를 보고 약속을 취소해야 하는 신입사원의 모습을 빠르게 보여주는 식이다. 표현의 수위에 한계가 있긴 했지만, 앞서 말했듯 경쟁자가 적은 상태다 보니 생각보다 꽤나 좋은 성과를 내었다. 못해도 회당 5천~1만 회 정도의 조회수는 챙길 수 있었다.
모니터링을 하면서, 점차 다른 기관들에서도 숏폼 영상을 많이 만들기 시작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는 기발하다고 생각하는 신선한 영상들도 있었다. 어떤 정부부처에서는 주어진 1분 동안 정책이나 행사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정확히 1분이 되면 종료되는 방식의 스피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포맷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괜찮다고 여겼는지, 점점 많은 호응을 얻기도 했다. 다른 기관에서는 자신이 소속한 기관의 특색을 살려 지역 특산물이나 명소를 소개하는 콘텐츠를 업로드하기도 했다. 지금에서야 많은 유튜버들이 쇼츠를 채널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지만, 그것이 이루어지기 전 찰나의 공백에 많은 기관 홍보팀들이 노력한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는 샘이다.
숏폼을 공부하면서 하게 된 생각이자 반성은, '나 역시 누군가에겐 꼰대구나'라는 것이다. 글에는 다 전달되지 못했지만 처음에 숏폼의 형식으로 홍보영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까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애들 장난', '너무 짧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너무나 강하게 박여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니, 오히려 블루오션으로 작용하게 되었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 이전 세대의 문법이 2030을 대상으로 하는 콘텐츠에 적용하기 힘든 것처럼, 지금의 내가 가진 문법 역시 언젠가는 새로운 세대에 적용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끊임없이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