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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씽크 Jul 03. 2018

하루키의 라디오

M씽크 6월 테마활동 : MBC 라디오

하루키는 여러분들 예상대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뜻합니다.

얼마 전 그가 도쿄FM에서 라디오 DJ를 맡게 됐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TV같은 미디어 노출은 물론 사진 찍히는 것도 달갑지 않아하는 사람이 왜 라디오일까?


의문은 그 지점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의문을 풀기위해선 

1970년 8월 방송된 라디오 NEB의 <팝스 텔레폰 리퀘스트>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라디오 NEB의 <팝스 텔레폰 리퀘스트>입니다. 라디오를 듣고 계셨나요?"
나는 입 안에 남아 있던 치즈 크래커를 황급히 맥주와 함께 넘겼다.
"라디오요?"
"그렇습니다, 라디오. 문명이 낳은...딸꾹...최고의 기계지요. 전기 청소기보다 훨씬 정밀하고, 냉장고보다 훨씬 작고, 텔레비젼보다 훨씬 쌉니다. 지금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쯧쯧쯧, 그러면 안 되죠. 라디오를 듣지 않으면 안 된다구요. 책을 읽어 봤자 고독해질 뿐입니다. 안 그런가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9) - 무라카미 하루키 作


<굿모닝 FM 김제동입니다>


헤르츠가 전자기파를 발견한 게 1888년이고, 최초의 본격적인 진폭변조(AM)를 이용한 라디오 방송은 1906년부터 시작됐습니다. 한 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기술적으로, 방송형태상 변하지 않는 유일한 미디어가 라디오입니다. 말 그대로 여전히 청소기보다 정밀하고, 냉장고보다 작고, 텔레비전보다 쌉니다. 


그리고 하루키가 쓴 NEB방송 DJ의 멘트처럼, 

인간의 고독은 끝이 없고 라디오는 백년동안 변함없이 그 곁을 지켜왔습니다.

  

머나먼 멕시코 만류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산티아고에게도 라디오가 있었다면, 

노년의 고독과 항해의 외로움이 훨씬 덜해졌을지 모를 일입니다. 


돈 있는 사람은 배 안에서 말을 걸어줄 라디오란 걸 갖고 있지. 야구 얘기를 해주기도 해. 
라디오로 야구를 듣는다는 건 얼마나 신나는 일일까
the rich have radios to talk to them in their boats and to bring them the baseball.
It would be wonderful to do this with a radio. 

<노인과 바다> (1952) 헤밍웨이 作

산티아고가 청새치를 잡던 시절로 부터 다시 반세기... 


라디오에는 여전히 대화가 있고, 웃음이 있고, 노래가 있습니다.

2018년 6월27일 오전 8시40분의 FM4U 라디오 방송처럼 말입니다. 


<M씽크 라디오 데이 방청 모습 : MBC 가든 스튜디오>
<활짝 웃는 M씽크 친구들>
<행복해져라~ 커피소년의 라이브 연주와 노래>


하지만 한결 같던 라디오도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어린 아이까지 스마트폰을 들고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을 이용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음악은 온라인 뮤직 플랫폼에서 월정액을 내고 듣고, 

오디오 콘텐츠는 팟캐스트가 대세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100년 가까이, 오랜 고목처럼 곁을 지키던 라디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비틀즈 라디오 조PD의 라디오 역사와 미래에 대한 특강>


35년간 라디오 방송을 해온 조정선PD는 미국처럼 장르화, 전문화된 라디오 채널의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클래식, 힙합, 재즈와 같은 전문 채널이 있다면? 

게다가 DJ가 인공지능이 못하는, 훨씬 좋은 음악을 발굴해 큐레이션 해준다면 청중이 돌아오지 않을까?

1950년대 짐과 아이린이 클래식 콘서트를 다니면서도 라디오에 귀기울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좋은 콘서트도 많이 다녔지만 다른 이웃들에겐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라디오 음악을 들으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They went to a great many concerts - although they seldom mentioned this to anyone - and they spent a good deal of time listening to music on the radio.

<기괴한 라디오> (1953) 존 치버 作


실제로 라디오의 현실적 생존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을 듯합니다. 

장르화를 꾀하고, 새로운 큐레이션 서비스를 추가하고,

 AI 스피커 플랫폼과 연동하여, 라디오 버튼이 사라진 스마트카에 이식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100년간 묵묵히 곁을 지킨 친구에 대해 생각할 때 떠오르는 건, 

현실보단 여전히 추억이고, 이성보단 따뜻한 감성입니다. 


<라디오 PD와의 대화>

현직 라디오 PD는 라디오 청취자들에겐 TV시청자에겐 없는 이해와 공감의 정서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웃기지 않아도 너그럽게 웃어주는 마음이 있다고 합니다. 

그게 라디오의 매력이라고 말합니다.


달리 말하면 그게 100년을 살아온 친구의 매력이란 이야기겠지요. 

청소기보다, 냉장고보다, TV보다 훨씬 멋진, 문명이 낳은 최고의 기계 라디오의 매력. 


초등학교 5학년 무렵에 소니의 조그만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생겼는데 그걸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어요. 1960년무렵이었죠. AM 라디오에서는 리키 넬슨, 엘비스 프레슬리, 닐 세다카... 그런 부류의 음악이 자주 흘러나와서 맨먼저 팝뮤직에 빠져들었습니다. 아직은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새롭고 신기한 시대였죠.... 

어느 시대 어느 세대든 음악을 정면으로 진지하게 듣고자 하는 사람이 일정 숫자는 있을테고 그것은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로 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휴대전화로 읽는 시대가 되어도 계속 종이책을 사서 읽을 거라 생각합니다. 세간의 대다수 사람들은 그때그때의 가장 편리한 매체로 흘러갈지 모르지만 어느 시대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 확실하게 존재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2011) 무라카미 하루키 作


하루키의 책이나 음악 미디어에 대한 생각은 라디오란 매체하고도 통합니다. 

"대다수가 편리한 매체로 흘러간다 해도, 어느 시대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존재한다."  

아마 무라카미가 진행하는 라디오 역시 그런 사람을 위한 방송이 되겠지요.    


하여, "오늘부터 라디오를 들읍시다!"라거나, "라디오가 변해야 합니다!"... 

따위의 이야기는 어쩐지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라디오의 시간은 다른 매체의 시간보다 확실히 느리고 천천히 흘러가는 듯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느린 흐름에 일단 몸을 맡기기로 마음 먹고 다이얼을 돌리면, 

분명 어디선가 바람같은 귀속말이 들려 올겁니다.    


"외로우면 라디오를 켜봐... 친구가 돼줄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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