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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일 만나 May 22. 2020

할머니는 늘 내게 묻곤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음식은

나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았다.

부모님 두 분 다 일을 하셨기 때문에 내가 기억하는 나이부터 늘 밥은 엄마가 아닌 할머니의 몫이었다. 어릴 때는 그게 참 싫었다. 엄마가 없는 것도 아닌데 바쁜 엄마 대신 소풍 갈 때 도시락이나 집에서 먹는 반찬이나 늘 어린아이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김치 나물 반찬보다는 돈가스 동그랑땡 그런 게 좋을 나이였다. 늘 할머니의 밥과 반찬은 맛이 없었다.


사춘기가 극심하게 온 고등학교 때는 할머니가 해준 음식에 머리카락이 나오기 일쑤였다. 부엌도 냉장고도 고춧가루가 묻어 있는 숟가락도 더럽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사춘기 때의 반항심이었던 것 같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기 시작한 고등학생 때부터는 집에서 밥을 안 먹기 시작했다. 내가 먹을 건 따로 사서 쟁여두고 할머니가 해준 밥과 반찬은 안 먹기 시작했다. 식사시간에 같이 밥을 안 먹고 혼자 챙겨서 혼자 먹기 시작했다.

그래도 늘 할머니는 내 몫의 반찬과 밥을 넉넉히 챙겨두었다. 그리고 늘 나를 볼 때마다 밥 먹었냐고 반찬 해놓았으니 먹으라고 했다. 그래도 나는 늘 먹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손녀의 입맛에 맞춰 준다고 이리저리 새로운 반찬도 해주시기도 했는데, 나는 참 안 먹었었다.


그런 내가 냄새를 맡으면 참지 못하고 먹었던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김치 콩나물국이다.

멸치육수 우려내어 매콤하고 시원하게 끓여낸 국.

특별한 레시피는 없다. 그냥 집에 있는 김치에 콩나물이 다였다. 다른 재료가 들어간 것도 없다.

근데 이상하게 식었는데도 냄비 뚜껑을 열면 확 맡아지는 냄새에 배가 고파지고는 했다.

다른 반찬 없이 국만 있어도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내고는 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 냄새가 맡아지면 괜히 안심이 되기도 했다. 오늘 맛있는 국이 있으니 반찬 걱정 안 해도 됐으니까.


그런 할머니는 내가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점점 온몸이 굳어지는 파킨슨병에 걸렸다.

처음에는 천천히 걷다가, 지팡이에 의존해서 걷다가, 휠체어를 타다가, 누가 잡아주면 걷다가, 마지막에는 식도도 굳어버려 식사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위에 줄을 꽂아 캔으로 식사를 때우셨다.


우리 할머니는 고기반찬을  참 좋아하셨는데, 할아버지가 환자에게는 좋지 않다고 조금씩만 주셨다. 차라리 그렇게 식사를 못하시게 될 줄 알았다면 진작 좋아하시는 거 실컷 드시게 해드릴걸 싶었다.


결국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모셨는데, 매일 가는 할아버지와는 달리 나는 가끔 갔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본인은 혀로 음식의 맛을 느끼지도 못하시면서 자주 찾아뵙지도 않는 손녀를 만날 때면 할머니는 정신이 깨어 있을 때, 꼬챙이 같이 마른 그 손으로 내손을 꼭 잡으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무슨 말을 하시는지 궁금하여 입가에 귀를 가져다 대면 “밥은 먹었냐”라고 물어봤다.

가끔 맑은 눈빛으로 나를 보며 가장 첫 번째 묻는 말은 바로 “밥은 먹었냐”였다.


어느 날, 밤 9시가 넘어서 찾아온 손녀에게 물어본 첫마디도 바로 그거였다. “밥은 먹었냐”


그때는 정신이 오락가락하셨을 땐데, 할머니가 집에 너 좋아하는 김치 콩나물국 해놨으니 집에 가면 데워먹으라고 했다. 동생도 좀 주고 밥 좀 집에서 먹으라면서...

“할머니가 집에 국도 끓여놨어?”라면서 웃어넘겼는데,  일주일 후에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지금은 집에서 할아버지가 요리를 하신다. 살림을 도맡아 하던 할머니가 아픈 이후로 말이다. 그 전에는 부엌에 얼씬도 안 하시던 할아버진데 말이다. 다 큰 손녀가 음식을 할 법도 한데, 늘 밥도 반찬도 할아버지가 다 하신다. 나는 일부러는 아니지만 평일에 거의 집에서 잠만 자기에.

감자탕부터 깍두기 열무김치까지 할아버지는 못하는 음식이 없으시다. 오늘은 호떡도 직접 부쳐먹었다.


할아버지가 음식을 잘, 하시기는 하나. 나는 가끔 할머니가 해주던 반찬들이 그립다. 특히나 금세 끓여내던 김치 콩나물국이 그립다. 이젠 더 이상 김장을 하지 않아서 인지,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반찬이 아니었던 건지. 그 이후로 김치 콩나물국을 집에서 먹은 적이 없다. 시원하고 칼칼하던 그 국을 말이다.

딱히 식당에서 팔만한 메뉴도 아니다. 백반집에서 매일 바뀌는 국중에 한 번쯤 나올 법한 국이려나.

할머니가 반찬 없을 때 끓여주던 그 김치 콩나물국이 가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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