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에게서 발견할 때,
우리는 공감과 이해보다 질타와 선 긋기를 우선하기 마련이다.
-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
사람의 인간관계는 알 수가 없다.
한창 모임을 활발하게 할 때, 분위기 메이커였던 나와 모임의 대화를 이끌어가던 그녀는
전혀 친해지지 않았다.
젊고 예쁘고 똑 부러지는 그녀는
나와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대화를 하면 뭔가 기가 빨렸다.
겉도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녀와 급 가까워졌다.
계기는 코로나로 인해 내가 산을 다니기 시작한 때였는데,
꾸준히 산을 가는 나를 보면서,
왜 그렇게 산을 가는지 궁금했다며,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고 자기도 등산에 데려가 달라고 했다.
그래서 같이 청계산에 올랐다.
같이 정상에서 사진도 찍고 명상도 하고 밥도 먹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길,
저 사람은 무슨 일이 있길래 저렇게 산을 갈까,
뭔가를 해결하고자 등산을 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며 함께 등산을 와보고 싶었다고 했다.
좋았다며, 또 가자고 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
공감해주고 동감한다는 느낌이 들었고,
마음이 꽉 차오르는 대화를 나눴다.
한창 주기적으로 만나야 했었을 때는 전혀 발견하지 못했고 전혀 친해지지 못했는데,
어쩜 그렇게 갑자기 소중한 존재로 둔갑한 건지,
나중에 들은 말인데,
한창 모임에서 볼 때는 내가 싫었다고 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니
사람을 좋아하고 쉽게 정을 주고 상처 받는 자기가 되게 싫었는데
내게서 그런 모습이 보여서 내가 싫었단다.
자기가 싫어하는 자신의 모습을 내게서 발견해서 싫었던 것 같다고 했다.
나보다 훨씬 잘났고 예쁜 그녀가
내게서 자신과 같은 모습을 발견했다고 하니
많이 신기했다.
나는 아직 누군가에게서도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 적이 없어서
어떤 느낌인지 생소했다.
오늘의 짧은 독서 후,
필사를 하고 난 이후의 끄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