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운명과 마음은 같은 개념의 다른 이름

-이처럼 사소한 것들(클레어 키건, 2023)-

by 로렝


도서: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

저자: 클레어 키건

번역: 홍한별

출판사: 다산책방

발행일: 2023.11.27


클레어 키건은 자신의 작품을 반드시 두 번 이상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영국 일간지 The Guardian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밝혔습니다.


“어떤 이야기든 제대로 이해하려면 두 번은 읽어야 해요.

그래서 책은 생각보다 훨씬 길죠.

두 번 읽혀야 완성되니까요. 결국 두 배 분량의 책인 셈이에요.”


홍한별 번역가 또한 이 말을 전하며,

책을 한 번 다 읽고 다시 앞 페이지로 돌아가 펼치면

비로소 작가가 의도한 암시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키건의 이야기는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문체에 화려함이나 과장도 없습니다.

누르고 삼가며, 줄이고 덜어낸 글입니다.

그렇다고 그저 담백한 건 아닙니다.

그녀의 글은 속삭이는 듯 조용하지만,

그 조용함 속에서 무게감 있는 침묵과 여운이 남습니다.


클레어 키건은 말로 다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완벽에 가까운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독자가 빈틈을 채우도록 의도한 듯한 글쓰기.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이 상상하고, 생각하고, 질문하게 됩니다.

그 점에서 이 이야기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우리를 성장시키는 경험이라 느껴졌습니다.


이 작품은 2024년, 배우 킬리언 머피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책을 두 번 펼치기 어렵다면,

한 번은 책으로, 한 번은 영화로 다시 들여다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1985년, 아일랜드. 침묵과 고통의 시절

배경은 1985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주말.

당시 아일랜드는 경제 불황으로 많은 이들이 미국, 영국 등지로 이민을 떠나던 시기였습니다.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불을 켜지 못하고,

아동수당과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 줄을 서야 했던 사람들.

고양이 밥그릇에 담긴 우유를 훔쳐 마시는 아이를 바라보며

주인공 펄롱은 조용히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펄롱은 석탄 판매점을 운영하며

빚 없이 다섯 딸을 공부시키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지만, 그럭저럭 사는 삶.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어린 시절로부터 이어져 온 슬픔이 있습니다.

펄롱은 미혼모였던 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늘 부재한 아버지를 그리워했고,

친구들에게 조롱당하던 기억이 그에게 깊이 남아 있습니다.


어느 날 석탄 배달을 갔던 수녀원에서

펄롱은 강금과 강제노역에 시달리는 미혼모 소녀를 마주합니다.

그 만남은 그의 기억을 건드리고,

묻어두었던 유년기의 상처를 다시 꺼내게 만듭니다.

처음엔 도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수녀회는 마을의 큰 권력을 쥐고 있고,

딸들의 학교도 모두 그 수녀회에서 운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고요한 갈등 끝에 한 가지 기억을 꺼냅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자신을 거두어준 미시즈 윌슨.

아버지라고 밝히지 않았지만 묵묵히 곁을 지켜주던 네드 아저씨.


그는 알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본 사람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는 것을.


작가는 이 이야기를 해피엔딩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펄롱은 이 선택으로 수녀회와 마을 사람들과 척질 수 있습니다.

딸들의 교육도 위태로워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선택합니다.

자신이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그 기억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손을 내밉니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운명은 마음과 같은 개념의 다른 이름이다.”


펄롱의 이야기는 바로 그 말과 닮아 있습니다.

그의 선택은 운명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었습니다.

내면의 솟구침이었습니다.

펄롱은 마음의 솟구침을 따라 사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에게 일어날 앞으로의 상황은 어려움의 연속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비교적 안정적인 가정 경제상황에서

불행하지도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으며

내면의 이유모를 불안감과 불편함에 시달렸습니다.


남들과 척지지 않고 적당한 삶을 살며 다섯 딸을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보내는 것을 목표로 여겼기에,수녀원의 강금과, 강제노역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펄롱은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고

자신에게 손내밀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갈등합니다.

눈감으라 조언하는 주변과 내면의 소리 사이에서.


이야기의 끝에서 그의 선택은

그를 본래적 현존재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주변의 말에 따라 살아가는, 자신을 잃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질문하며

갈등한 끝에 내면의 소리를 따르는 답을 찾아

미혼모 소녀에게 손 내민 것입니다.


어딘가 무료하고

이유없이 행복하지 않다면,

자신의 존재를

치열하게 질문하고 답을 찾아나가는

여정을 시작해 보시길, 응원합니다.


그렇게 펄롱의 내면은 활기를 되찾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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