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빠, 남성 베이비 시터, 레즈비언 모모
비 오는 오늘 아이를 숲학교 수업에 데려다주며 오랜만에 아이 니꼬를 데리고 온 친구 에디를 만났다. 옆동네 사는 대학원 동기 에디는 약 2년간 현재 세 돌인 비올레따와 두 돌이 다되어가는 동생 니꼬를 키우며 전업 육아빠 생활을 해왔다. 취업난이 한창인 요즘 오랜 구직생활 끝에 마침내 몇 달 전 취직해 얼굴을 못 본 지 좀 되었는데 오늘은 아내가 컨퍼런스가 있어서 출근을 늦추고 아이를 데려다주러 왔다 했다. 재택 옵션이 많은 코로나 이후 미국의 직장과 달리 전일 출퇴근직이라 온 가족에 많은 변화가 있었으리라. 다행히도 그들은 그의 빈자리를 채워줄 베이비시터를 구했고 그는 에디 아내의 친구의 남편인 알렉스이다. 아빠와 함께하는 게 익숙하던 아이들에게 아빠의 빈자리를 다른 삼촌이 채워주는 건 어쩜 자연스러운 적응이었을 싶다. 샨띠는 어제 알렉스와 니꼬를 우연히 마주친 후 ‘알렉스 삼촌 봤어, 에디 삼촌이 오피스 나가서 알렉스 삼촌이 니꼬랑 있는 거야.‘라고 한다. 얼마 전 아이들과의 피크닉 때 엄마, 아빠와 온 아이들 외 두 팀의 아이들이 베이비시터와 함께 왔는데 알렉스와 또 다른 남성 베이비시터였다. 그는 헨리라는 아이의 베이비시터로 원래 그가 다니던 유치원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예전에 동네 도서관에서 아이와 많이 닮아서 아빠로 착각했던 어떤 동양인 남성 베이비시터도 있었다. 이렇게 요즘 뉴욕에선 드문드문 남성 베이비시터가 보인다.
피크닉에 자주 오는 또 다른 알렉스는 내가 존경하는 육아빠로 매일 4살 남자아이와 돌이 갓 넘은 딸아이를 데리고 공원에 나간다. 그를 알기 전에도 항상 동네 공원이나 놀이터 어딘가에 나와있는 그들을 보았었고, 유모차를 밀면서 뛰고 있는 것도 보았던 것 같다. 첫째는 시에서 지원해 주는 유치원에 보낼 법도 한데 모두 홈스쿨링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가장 존경하는 부분은 그가 일주일에 세 번인 아내의 오피스 근무일 점심시간마다 막내의 모유 수유를 위해 아이 둘을 데리고 지하철을 타고 아내의 오피스에 다녀온다는 것이다. 함께 피크닉을 하다가 pilgrimage for the mother’s milk를 떠날 시간이라고 유모차를 밀고 공원을 가로질러 지하철 정류장으로 향했다. 예전엔 육퇴 후 저녁에 바텐더일도 한다고 들었었는데 이젠 주말에 아내에게 육아 임무를 넘기고 비영리 단체 프리랜스 일도 한다고 한다. 그 모든걸 해내면서 피곤할만한데도, 그는 아이들을 무한한 인내심으로 차분하게 대한다. 하나 키우면서 육퇴 후에 구겨져 있고, 피곤함에 부쳐서 나도 모르게 인내심이 바닥나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스스로를 그에 비추어보며 육아인으로서 그를 동경한다. 그의 아내 섀나를 함께 만났을 때 깨달았다. 그 모든 에너지는 아름다운 협업에서 나온다는 걸. 그를 존경하는 만큼 그 부부의 협업을 존경하고 동경한다.
샨띠는 세 마리의 동물 그림을 볼 때마다 본능적으로 엄마-, 아빠-, 애기- 식으로 이야기한다. 그런 샨띠에게 어느 날 잠자리에서 이야기해 주었다. ‘오늘 샨띠와 놀았던 친구 루까와 알도 있지? 루까랑 알도는 엄마가 둘이야. 제스 이모와 프란체스카 이모. 이렇게 엄마가 둘. 아빠는 없어. 그렇게 엄마가 둘인 가족도 있어.’ 장난감이 가득한 넓은 뒷마당 플레이데이트에 우릴 자주 초대해 주는 레즈비언 부부 제스와 프란체스카에게 언젠가 이야기했다 ’와, 양쪽 다 아이를 돌아가면서 낳을 수도 있겠다!‘ 제스는 대답했다. ’응,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나보다 프란체스카가 출산의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둘 다 프란체스카가 낳았지.‘ 그렇게 프란체스카는 정자기증을 통해 아들 둘 출산 후 일에 복귀하고, 제스는 전업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샨띠는 아직도 아빠가 없다는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 아빠 있어~‘라고 한다. 정자를 기증한 생물학적 아빠는 어딘가 있겠지만 가족으로서의 아빠가 없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까? 샨띠 친구들 중 싱글맘과 사는 친구가 셋이 있다. 그중 둘은 아빠와 가끔 보는 중이라 그에 대해, 친구가 엄마와 살고 있고 아빠집이 따로 있어서 아빠집에 가끔 간다고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앞으로 어떻게 아이가 알아듣게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설명해 줄까 고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