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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무 무용단 공연 관람

만 세 살 미만 아이와 공연 보기

by 무아과

가야금 공연, 생황 공연에 이어 한국문화원에서 국악을 사랑하게 된 딸아이와 함께 보는 세 번째 공연이다. 운이 좋게도 이번에도 가장 앞자리 중앙에 앉았다.

아이는 내 무릎 위에, 내 왼편에는 이웃 한국 친구와 그의 일행이 앉았다. 공연 관계자 분이 조심스럽게 오셔서 공연이 조용한 순간이 많아 아이가 소리를 내어 다른 관객이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 퇴장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양해해 달라고 부탁했고, 난 그 사실을 아이에게 재차 설명했다. 이윽고 암전, 조용해진 한가운데 무대 음악이 깔리고, 무대 배경에서 안갯속에 있는 듯 가장자리가 모호해 보이는 보름달이 나타났다. 마침 오늘 밤 개기월식이 있는 날이라 시기적절하게 와닿았다. 무대 오른편에는 남성 무용수가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듯 있었다. 고요했던 무대에서 점점 움직임이 하나 둘 더해지고, 흰 의상을 입은 무용수도 하나 둘 셋 합류했다. 여성 무용수가 흰 민소매 탑 위에 걸쳐 입은 살이 비치는 흰모시 소재의 긴소매 상의는 한복 저고리를 연상케 했다. 좋아하는 강강술래를 연상케 하는 원형과 나선형의 움직임이 자주 등장했다. 공연에 심취해서인지, 공연 전 주의사항을 듣고 긴장한 탓인지, 피곤해서인지 아이는 별 미동도 하지 않고 내 무릎 위에서 유심히 공연을 지켜보았다. 그 덕에 나 맨 앞에서 보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의 기를 온전히 느끼는데 집중했다.


이렇게 몰입해서 무용 공연을 보았던 20대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20대 초반 대학 시절, 세계 무용 축제 자원봉사를 하며 처음으로 접했던 다양한 무용수들의 공연, 또 다른 축제에서 절친과 함께 넋을 놓고 본 이스라엘 남성 무용수들의 공연, 뉴욕에 와 처음 본 필로보스 공연단 공연, 피나 바우쉬의 작고 전과 후의 공연… 새로 하는 모든 경험은 내 몸을 파고드는 듯 강렬했고, 생각의 방해 없는 순수한 몰입은 저절로 일어났다. 태어난 지 3년도 되지 않은 이 아이가 관객이 되어 처음 무대 바로 앞자리에서 경험하는 60분의 시간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을까? 훗날 기억 어딘가에 남게 될까? 공연 전 관객석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아이는 무대에서 보는 관객이 어떤지 궁금한 것일까? 이 아이도 언제 무대에 서게 될까? 한 때의 내가 꿈꿔보았던 무용수의 삶을 잠깐이라도 경험해 볼까?


무용수들의 사지, 손끝과 발끝, 숨소리, 무대의 공기에서 기운이 흘렀다. 공연은 정점에 이르고 기운이 강해지며 전율이 느껴졌다. 점점 사물놀이 굿판 축제 분위기가 되었고, 배경음악에서 ‘잘한다’ 등의 추임새가 들리고, 우리도 들썩들썩 관객과 함께 박수와 환호를 날렸다. 아이는 내가 함께 들썩이며 앉은 채로 리듬을 타는 것에 흥이 잔뜩 올라서 무대가 다시 달아오른 열을 식히는 분위기로 돌아갈 때 진정시키는데 좀 애를 먹었지만 그래도 제자리에서 무사히 잘 버텨주었다. 공연 마무리 후 무대 인사에서 우린 몸을 다해 무용단에게 박수와 갈채를 보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모든 지하철 역의 여정의 계단을 홀로, 또는 낯선 사람들의 도움으로 아이 태운 유모차를 들어 오르락내리락하며 무사히 돌아오는 길, 보통 아이가 잠들 시각 거의 집에 도달했을 때 밝은 달이 건물 위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곧 개기월식으로 까꿍 하기 이전의 달을 졸음기가 가득한데도 아직 잠들지는 않은 아이에게 손가락으로 보여주고 길을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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