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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복 地雷復

감이당 퇴근길 주역 수업 후기

by 무아과

‘You will fail, and you will learn.’

당신들을 실패할 것이고, 배울 것입니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대학원 유학 시절 거의 아흔 살이 가까우셨던 학장님은 첫 오리엔테이션 수업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0대 초반의 유학생 시절, 한 발표시간에서 들은 크리틱에 잠시 화장실에서 눈물을 쏟고 있던 나를 발견하신 학장님은 곧으면서 느린 할머니 걸음으로 자신의 오피스로 데려가 휴지를 건네며 내가 첫 학기 수업에서 뭐라고 했냐며 저 말씀을 다시 상기시켜주시기도 했다. 학교는 갓난쟁이처럼 철없던 20대 초의 내가 작은 실패를 반복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었다. 이후 십수 년간 실패와 후회, 회복의 반복으로 살아가며 지금도 나의 주기를 돌아보는 중이다. 地雷復 지뢰복의 초구, 不遠復 无祗悔 元吉 불원복 무기회 원길은 이렇게 작은 실패를 통한 배움을 이야기한다. 아이에게 유년기에 작은 실패를 자주 할 수 있는 환경에는 어떤 것이 전제되는가? 아이가 작은 모험과 일탈을 통해 결국 스스로의 경계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거라는 아이에 대한 믿음, 또한 아이가 설령 길을 잃어 동네를 배회하고 있더라도 이웃이나 타인 누군가가 아이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줄 것이라는 세상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첫째의 조건은 내가 어찌할 수 있다 치고, 총기 소지가 허용되고, 각종 범죄가 빈번한 도시 환경에서 만 3세에게 부모로서 어쩌다 가끔 친구 생일 파티에서 미국식 설탕덩어리 케이크 몇 입을 먹게 해 주는 것 외에 어떤 모험과 일탈을 허용해 줄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육이 - 아름다운 회복이라는 뜻을 알기 전에, 이미 休復吉 휴복길이라는 단어를 소리 내서 읽기만 해도 치유와 회복이 함께 일어나는 느낌이다. 한문 길을 또 다른 한글 의미 길로 하여 대한민국 어딘가에 휴복길이라는 길을 상상해 본다. 낮게 깔린 잔디와 풀들에서 너무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온 사람들이 앉거나 누워 낮은 자세로 아름다운 회복을 취하니 길하다. 육삼은 頻復 厲无咎 반복 려무구 자주 회복하는 것이 위태롭더라도 허물이 없다. 연초의 다짐 및 계획이 춘곤증과 피로로 무너진 스스로를 반복하여 회복시키려는 3월 말 지금의 나를 본다. 육사 中行獨復 중행독복 홀로 회복하는 것, 육오 敦復无悔 돈복무회 부지런히 회복하는 것, 둘은 끊임없는 자기 돌봄, 자기 수양으로 들린다.


상육 迷復凶 有災眚 用行師 終有大敗 以其國君 凶 至于十年 不克征 미복흉 유재생 용행사 종유대패 이기국군흉 지우십년 불극정, 혼미한 회복이라 흉하니 천재와 재앙이 있어 군사를 동원하는데 쓰면 결국 패하고 나라를 다스리게 되면 군주는 흉하게 되어 10년 동안 나아갈 수 없다. 이 대목은 육이, 육삼, 육사의 회복의 흐름을 거스르는 듯하고 특히 초구와 가장 반대되는 메시지이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채 미혹되어 멀리 가버리면 결국 크게 실패한다,. 부도난 사업가가 회복할 새도 없이 바로 새로운 사업을 크게 벌이거나, 이혼한 사람이 홀로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않은 채 바로 재혼하는 것과 같은 위험함이 아닐까.


復 亨 出入无疾 朋來无咎 反復其道 七日來復 利有攸往

복 형 출입무질 붕래무구 반복기도 칠일래복 이유유왕


회복은 형통하니 나가고 들어오는데 병이 없어 친구가 와야 허물이 없다. 복이 돌아와 회복을 반복하여 7일 만에 회복하니 나아갈 바는 두는 것이 이롭다. 작게 우리 몸으로 생각하면 회복으로 순환이 잘 되어 좋은 기운과 영양소가 우리 몸으로 들어와 병이 없는 것, 크게 생각하면 회복으로 자기 내면소통이 잘 된 상태에서 친구가 와서 허물이 없는 그림이 그려진다. 한의학과 아유르베다에서는 공통적으로 몸에 영양을 주는 치료에 앞서 해독을 우선시한다. 인간 관계도 결국 나 자신 속의 독이 치유되고, 자기 돌봄과 내면 소통이 전제될 때 타인과의 깊이 있는 소통이 가능하다. 얼마 전 이수한 비폭력 대화라는 대화법 과정을 가르치는 선생님께서 수업 중 ‘어느 위치에 있던 공감하는 사람이 리더’라고 말씀하셨다. 내게 지금 어떤 감정과 욕구가 있는지 끊임없이 알아차리고 돌보는 게 아름답고, 부지런한 자기 회복이 아닐까. 3월 말, 꺾어진 다짐과 계획의 작심삼일을 다시 그렇게 부지런히 회복하며 차분히 다시 나아갈 방향을 알아볼 때이다.


에필로그.

어젯밤 꿈에서 아파트 건물에 맨발로 있다가 지나가던 등산객 무리와 어울리게 되어 함께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을 등산하게 되었다. 하산 후 보도에서 일행과 버스를 기다리던 중 나 홀로 맨발임을 알아차려 함께 버스를 타지 않고 택시를 타거나 집으로 돌아가거나 신발을 사는 것을 고려하였다. 不遠復 불원복, 멀리 가지 않은 곳에서 과오를 알아차려 회복할 수 있으니 참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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