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눈물, 언니 눈물, 멋있는 눈물
동네 공원 놀이터를 가는 길에 아이의 한 살 많은 친구와 아기 동생, 그들의 아빠를 만났다. 놀이터 근처의 회전목마를 타고 가는 길이라고 했다. 아이에게 회전목마 타고 싶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해서 동행했다. 아이와 마지막으로 회전목마를 탄 게 바로 이곳이었는데, 처음엔 타고 싶다던 회전목마에 막상 들어서자 말이 무섭다고 해서 벤치에 앉았고 회전목마가 돌아가는 내내 아이는 나가! 나갈래! 메리고라운드 무서워!’ 하고 울부짖었었다.
6개월이 흘러 이제 아이는 막 세 돌이 되었다. 동행한 네 살 배기 친구가 목마에 타려고 망설이다가 무섭다고 울며 아빠 품으로 돌아가는데 세돌배기는 웬일로 자긴 이제 언니라서 안 무섭다며 과감하게 높은 말 하나를 가리키며 태워달라고 한다. 그래도 막상 목마가 돌아가면 무서워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옆에 서서 손을 잡아주었다. 고백하자면 난 어릴 때부터 빠르게 움직이는 놀이기구를 극도로 무서워했던 쫄보라서 사실 아이의 갑자기 높아진 담력이 반가우면서 동시에 당혹스러워 목마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다른 한 손으로 옆의 회전목마를 움켜잡았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목마 위에서 아이는 엄마 손을 꼭 잡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동그란 두 눈으로 천천히 살피며 이 모든 것들을 느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무서워?’라고 물어보자 ‘이건 추운 눈물이야’라고 하는데 전혀 춥진 않고 아이는 아무래도 센 척을 하는 것 같다. ‘무서운 것 같은데, 무서우면 무섭다고 얘기해도 돼.’라고 얘기했다. 아이는 눈물이 더 터져 나오려고 하는 걸 입에 힘을 주고 터질 듯한 볼에 보조개를 피게 하여 시선은 잠시 위를 보며 삼켜내었다. 이 표정을 처음으로 보았던 건 역시 거의 6개월 전, 일주일에 한 번, 3시간씩 보내는 공원 숲 유치원을 시작한 첫 몇 주의 적응 기간, 몇 번은 울다가 조금 지나자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으려고 정확히 저런 표정을 했었다. 누가 울지 말라고 얘기한 것도 아닌데, 벌써 저렇게 혼자 감정을 삼켜내는 연습을 하는 게 짠하면서 한 편으로는 내가 너무 그동안 아기들이 ~~~ 하면 우는 거야 언니는 씩씩해~ 하며 언니의 강함을 강요해 온 게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지금은 누구보다도 언니 big girl이 되고 싶은 아이이기에.
이렇게 전에는 무서웠던 것들이 점점 무서워지지 않으며 아이는 자라는 중이다. 주차장의 차들이 무서워 주차된 자전거를 태우려 들어가면 늘 울며 건물 안에서 기다린다고 하던 아이가 어느새 자전거 주차장에 함께 들어가 엄마를 위해 문을 잡아준다. 한편 아이가 또래 다른 아이들에 비해 조심성이 많은 편이라고 조금 경계를 느슨히 하고 있던 난 이제 다시 긴장할 일이 생긴다. 며칠 전에는 친구와 함께 밥을 먹던 음식점 문을 갑자기 열고 밖으로 나가버려 쫓아 달려 나가기도 했다.
회전목마를 다 타고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가 아이에게 다시 한번 물어봤다. ’ 아까 진짜 무섭지 않았어? 정말 추운 눈물이었어? 무서우면 무섭다고 말해도 괜찮은 거야 ‘ 내심 나는 아이가 내밀한 두려움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느낄까 마음이 쓰여서 무서워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자 ‘언니 눈물이야’ ’ 멋있는 눈물이야‘라고 답한다. 그래, 아이는 눈물을 삼키며 동시에 볼에 보조개가 깊게 파이게 웃고 있었다. 오랜 두려움을 온몸으로 마주한 소름 돋음(chill)로 추운 눈물, 그 경계를 넘은 언니의 눈물, 그런 자신의 용기가 뿌듯한 멋있는 눈물이었다. 난 그날 밤 몇 번이고 그 눈물의 영상을 돌려보았다. 6개월 전의 두려워서 울부짖는 회전목마 영상도 함께. 공교롭게도 아이는 똑같은 핑크색 반팔 셔츠를 입고 있었다. 나에겐 어떤 두려웠던 것들이 지금 두렵지 않고, 아이와 나는 어떤 지금의 두려움이 나중에 두려워지지 않아 질까? 두려운 것들로부터 달아나고 싶을 때 나는 아이의 회전목마 눈물을 떠올릴 것이다. 추운 눈물, 언니의 눈물, 멋있는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