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그릇을 채우지 않는다.
물은 그릇을 채우지 않는다.
그릇이 물을 가둘 뿐이다.
삼십 년 넘게 나는 가운데 서려고 했다.
안 됐다.
추석날.
친척들은 테이블에 모인다. "누구는 결혼했대" "누구는 승진했대" 성공 자랑 대회다.
나는?
벽.
"너는 뭐 해?"
"일요."
거짓말이다. 새벽에 이상한 글 쓴다. 아무도 안 읽을. 하지만 이걸 말하면 "아직도 그래?" 듣는다.
그래서 거짓말한다. 사랑으로.
중심은 시끄럽다.
가장자리는 조용하다.
나는 조용한 곳에서 본다. 저들이 못 보는 것을.
먼지. 그림자. 균열.
"왜 평범하게 못 살아?"
모른다. 물한테 "왜 네모 못 돼?" 묻는 거랑 같다.
그런데 가끔.
누군가 온다. 중심에서 벗어나 가장자리로.
우리는 말없이 선다. 벽에 기대어.
"힘들지?"
"응."
그게 전부다. 가장자리 사람들은 말이 적다. 설명 필요 없다.
나는 삼십 년 넘게 틀에 맞추려고 했다.
이제 그만한다.
물은 네모가 안 된다. 억지로 얼려봤자 녹으면 다시 물이다.
추석 끝.
돌아간다.
새벽 3시. 빈 종이. 아무도 없는 곳.
내 자리.
가장자리는 춥다.
하지만 거기 진짜 내가 있다.
중심에는 가짜들만.
끝이 아니다.
물은 끝이 없다. 증발했다 비 되고 강 되고 바다 된다.
나도 그렇다.
지금 가장자리에 있지만 언젠가 바다가 될 것이다.
중심의 사람들은 모른다.
가장자리가 진짜 중심이라는 것을.
壬申, 서른 후반, 가장자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