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도 결국 곁에 둔 것의 냄새를 따라가게 되니까
가끔은 내가 저지른 작은 실수 하나가, 마치 나비가 제 날갯짓으로 태풍을 부른다는 비유처럼 과하게 확대되어 돌아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실제로는 그 정도는 아닐 테지만, 마음은 늘 과장되기 마련이다. 그러다 문득, 불교에서 말하는 업(業)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우리가 한 생각, 한 말, 한 행동이 다 어디론가 흘러가 모여 다시 나를 향해 되돌아온다는 그 단순한 진실.
그 말 덕분에 나는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가능하면 좋은 말과 가까운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하지만 잘 안 될 때가 있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마음이 눅눅해지면, 좋은 말이 아니라 대충 쏟아진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온다. 그러면 또 어김없이 그 말들이 내 하루를 되돌아와 무겁게 누른다. 마치 내가 만들어낸 파도가 내 발목을 다시 치듯이.
그럴 때마다 법구경의 구절을 떠올린다. 향을 감싼 종이는 향내가 나고, 생선을 묶은 새끼줄은 비린내가 밴다. 결국 무엇과 가까이 서 있었느냐가 나를 드러낸다. 사람도 그렇다. 좋은 말을 품은 사람 옆에 있으면 마음이 조금씩 향기로워지고, 불평과 비난에 젖어 있는 사람 곁에 오래 서 있으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마음이 비릿해진다.
이쯤 되면 조금 우스운 생각도 든다. 종이도 향냄새가 배는데, 나는 사람인데, 얼마나 더 잘 스며들겠나. 그러니 내가 멀리하고 싶은 냄새와 가까이하고 싶은 냄새를 잘 선택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결론 같은 결론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최근 나는 내 잘못에서 이상한 향기를 하나 발견했다. 실수라는 건 대개 찔끔 아픈 뒤끝을 남기지만, 그 끝에서 반성이라는 빛이 피어난다. 그 덕분에 나는 더 향기로운 사람들 곁에서 다시 마음을 일으켜 세우게 되었다. 잘못은 잘못이지만, 그 잘못 덕에 나는 더 나은 향을 찾아가고 있다.
생각해보면 좋은 업도, 나쁜 업도, 결국엔 내가 만들어낸 흔적일 뿐이다. 하지만 그 흔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음 걸음의 냄새가 달라진다. 나쁜 상황을 오래 씹어보면 쓰지만, 곱씹어보면 쓸쓸함 너머에 작은 단맛도 있다. 승화라는 것은 아마 그 단맛을 알아보는 기술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다짐한다. 향기를 좋아하면 향기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서자. 나쁜 냄새를 피하고 싶어도 세상은 복잡하니 어쩔 수 없이 어딘가에 스며들겠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 번쯤은 내 마음이 향 쪽으로 기울도록 만들어보자.
그게 내가 업을 조금 덜 무겁게, 그리고 조금 더 아름답게 살아내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