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구멍도 나이를 먹는구나.
'얼죽아'라는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얼죽냉'이었다. 냉수 아닌 물은 물 취급도 안 했다. (좀 더 있어 보이게 표현하고 싶지만 이게 딱 적절하기도 해서)
"차가운 물 좀 그만 마셔. 물은 우리 몸 온도랑 비슷한 미온수를 마셔야지"
x 30년 (from. 엄마)
'세뇌 잔소리'가 유일하게 안 먹힌 영역이 아닐까 싶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들어온 말 중에 성실하게 거부해 온 유일한 말.
(잔소리라는 표현보다 가르침이 더 좋을 듯하지만 당시 내가 듣기엔 잔소리가 맞아서요.)
그런데/ 세상에/ 말이지
30대 후반이 되면서 내 목구멍이 차가운 물을 꺼리기 시작했다. 그걸 인지한 순간 내 뇌리를 스치는, 아니 세게 타격한 단어 "노화". 노화의 여러 가지 현상 중 '노안'이 있듯이 '노 목구멍'도 있나 보다. 나이 드는 것도 서러운데 목구멍으로 냉수를 넘기는 그 시원함을 즐길 수 없다니. 진짜 서럽네.
처음엔 미온수를 마시는 게 인정이 안 됐는지 (이게 뭐라고 인정하고말고 인지, 유별난 사람인 거 인정)
정수기에서 정수 + 냉수 반반을 섞어 마셨다. 반 컵 따르고 버튼 눌러 모드 바꿔 반 컵 따르기가 은근히 아니 대놓고 귀찮아서 어느 순간 정수만 마시게 됐고. (귀찮기 때문인지 아니면 사실 그 반의 냉수도 목구멍이 거부했을지도) 그렇게 노화 스텝 1을 받아들이게 됐다.
인간이 살아오면서 성장하기까지 까지 하나하나 얻게 되는 것들, 배우고 습득하는 것들,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숙되는 것들, 이 모든 것들을 얻기까지 숱한 노력을 한다. 그 성장기를 찍고 나면 인생은 얄짤 없이 '노화'라는 이름으로 그것들을 천천히 야금야금 티 안 나게 도로 가져간다.
마치 알랭 드 보통이 책에서 언급한 자연의 친절한 속임수처럼.
노화는 피곤해 보이는 것과 좀 비슷하지만, 잠을 아무리 자도 회복되지 않는다.
해가 갈수록 조금씩 더할 것이다.
올해의 이른바 못 나온 사진이 내년에는 잘 나온 사진이 된다.
자연의 친절한 속임수는 모든 일을 천천히 진행시켜 우리를 상대적으로 덜 놀라게 하는 것이다.
- 알랭 드 보통의《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중 -
가끔은 그 친절에 의구심이 든다.
하찮게 냉수냐 미온수냐로 시작한 얘기지만 사실 자연의 속임수가 과연 정말 친절한 거 맞는지 우리 부모님을 보면 그 속임수에 조금 화가 난다. 왜냐하면 해가 거듭할수록 자연도 덜 친절해지는 거 같아서. 조금씩 가속이 붙는 거 같다. 자연도 속도를 조절하기에 힘에 부치는 건지.
물었던 질문을 돌아서서 또 하는 아빠를 마주했을 때. 불과 한 시간 전에 한 대답을 반복해야만 했던 나는 미온수를 찾는 날 마주했을 때보다 더 많이 마음이 그랬다. (아팠다.)
내가 10년 전 운전을 처음 시작할 때 운전을 가르쳐 주던 엄마가 이제는 내 오른쪽 옆에 타면서 이젠 누가 운전해 주는 차 타는 게 좋다고 말할 때 미온수를 찾는 날 마주했을 때보다 더 많이 마음이 그랬다. (아팠다.)
- 자연아, 조금만 더 친절을 풀어 주길 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