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삼겹살이 좋다고 하셨어.
우리 엄마는 여느 K-맘과 같이 자식을 위해 한평생 희생하며 살아왔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의 인식 속에 자식과 희생은 한 세트, 마치 라면에 김치처럼, 당연한 건 아니지만 빠지면 매우 섭섭하거나 뭔가 잘못된 거 같은)
내가 우리 엄마 딸이라 매우 주관적 의견일 수 있지만 우리 엄마의 희생은 탑(top) 급 이다. 여기서 엄마의 고생 스토리를 나열할 생각은 없지만 급 정도는 말해야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말에 힘이 실린다.
우리 엄마는 답정너 입니다.
우리 엄마는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답정너’ 스킬을 장착했습니다.
우리 엄마는 자신의 마음을 돌볼 줄 아고 아낄 줄 아는 똑똑한 사람입니다.
우리 엄마는 전략가입니다.
대학 시절 학교랑 집이랑 거리가 있어 기숙사 생활을 1년 하다가 2학년부터는 학교 근처 오피스텔에서 자취했다. 그 말은 즉 20살 때부터 난 집에 자주 가봐야 일주일에 한 번, 과제나 시험으로 바쁠 땐 길게는 한 달에 한 번 집에 갔다.
자식이 본가에 온다면 엄마들이 통상적으로 하는 질문 “뭐 먹고 싶어?” 우리 엄마도 늘 그 질문을 했었지. 다만 그 질문 뒤에 따라오는 추가 질문이 있었을 뿐.
“뭐 먹고 싶어? 삼겹살?”, “뭐 먹고 싶어? 회?”, “뭐 먹고 싶어? 치킨?” x N
그 추가 질문은 답을 듣고자 하는 질문이 아닌, 질문을 가장한 의견 제시였다. 처음엔 몰랐다. 그래서 “감히”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른 적도 있다. 그럴 땐 유난히 엄마가 미식가로 빙의했다. 어쩜 그리 날카로운 음식평을 하시던지,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캐치했다.
'아, 오늘 엄마가 먹고 싶었던 건 짬뽕이 아니라 삼겹살이었구나.'
그렇다. 엄마도 좋아하는 음식이 있는, 그날따라 땡기는 음식이 있는, 그리고 그걸 먹자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1이다. 왜 특히나 우리 엄마 세대는 싱크대에 서서 후루룩 물에 밥 말아 먹는 모습을 상상하면 이질감이 없을까? 왜 고깃집에 가면 집게랑 가위는 당연히 ‘엄마 거’가 되는 걸까? 왜 엄마는 닭 다리를 안 먹었을까? 왜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을까? (feat. god, 혹시나 어린 친구들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미안합니다.) 왜 엄마는 희생의 아이콘이어야만 하는가?
총량의 법칙이라는 언젠가부터 표현이 자주 쓰인다. 예를 들어 '행복 총량의 법칙' 또는 'ㅈㄹ총량의 법칙' 등등. 우리 엄마는 이미 이 표현이 쓰이기 이전부터 ‘희생 총량의 법칙’을 통해 자신을 지켜온 건 아닐까(유행을 앞선 자).
먹는 행복이 얼마나 큰지 우리 모두 잘 안다. 굳이 말 안 해도 알 만큼 이건 인간의 기본 요소 세 가지 중 하나. 그리고 세 가지 요소'의, 식, 주' 중 가장 가성비와 가심비가 좋다. 이 '식'을 통해 엄마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이며 자신을 보살필 줄 아는 대단히 현명한 사람.
이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집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 게 백 퍼센트는 내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식스센스급의 반전이네. 내 대학 5년 동안 (과 특성상 5년) 나는 어쩜 엄마의 제일 좋은 외식 메이트 역할을 하며 무의식의 효도를 했겠다.
- 존경해요. 엄마 -
p.s.: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친한 친구를 만나도 내가 먹고 싶은 걸 편하게 주장 할 수 없을 때도 종종 있고요.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와 밥 먹는 거 자체가 '힐링'의 행위는 아닌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