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서럽긴 하더라.
아이가 6개월 때쯤으로 기억한다. 언제쯤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인 지금은 그때로부터 2년 정도 지난 후다. 그때 유일한 내 하루의 낙은 아이 낮잠 재운 후 점심으로 컵라면을 먹는 거였다. ‘오늘은 무슨 컵라면을 먹을까?’가 그 당시 나를 위한 유일한 (행복한) 고민이었다.
22년 8월의 어느 날, 한여름 무더위로 바깥공기를 차단한 탓인지 유달리 아이의 울음소리가 집안을 꽉 채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말 못 하는 아이도 짜증이 났겠지. 덥다는 이유로 집에만 있었으니.
아이가 투정을 부리며 낮잠을 거부한 탓에 점심시간이 이미 지나서 너무 배가 고팠다. 빨리 먹고 싶은데 아이는 내 인내심을 알아보고 싶었는지 누웠다 일어났다를 여덟 번 반복했다(얄미운 오뚝이 마냥).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 고통은 귀여운 수준이 아닌 세상이 원망스러울 정도의 고통이었다. 고작 라면 한 입 먹고 싶은 게 다인데, 이게 왜 큰 욕심이 돼버리는 건지.
나는 욕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다. 어느 정도냐면, 추임새 정도의 수위 낮은 속된 표현인 ‘지읒 리을’ 도 입에 안 담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운전 중 난폭 운전자를 만나도 짧고 임팩트 있는, 반사 신경처럼 나오는 외마디 ‘쌍시옷’도 나는 쓰기를 거부하며 살아왔었다.
그런 내가 그날은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꽤 수위 높은 욕을 내뱉었다(shoes). 그래야 내가 살겠더라. 물론 아이에게 한 게 아닌 컵라면을 먹고 싶은데 먹을 수 없는 그 참담한 상황에 한 거다. (그리고 아이가 듣지 못할 데시벨로 했으니, 오해는 없길 바라)
욕 다음 단계는 눈물 찔끔 이었다. 나 자신이 너무 불쌍했다. 고통스러워하는 나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꾸밈없이 표현하자면 “없어 보였다”.
얄미운 오뚝이도 눈치는 있었는지 몇 분 후 잠들었다. 그 쾌재. 못 잊지.
컵라면은 무조건 100℃의 끓는 물을 부어줘야 맛있지만,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는 건 내게 사치였다. 그 어떤 달그락 거림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 사치를 부리다가 아이가 깨면 난 그 뒷감당을 할 수 없는 나약한 사람이란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 있었기에.
정수기의 85도의 물도 땡큐베리머취.
라면을 입에 한입 넣는데, 과장 좀 보태서 세상 부러울 게 하나도 없었다. (인간은 참으로 원초적 존잰데 고귀한 척 살아갈 뿐임을 증명)
라면을 다 마시고 (먹다가 아니라 마신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 불과 몇 분 전의 화로 가득 찼던 나를 반성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러나 반성은 순간일 뿐,
낮잠 거부 오뚝이와 컵라면 러버의 팽팽함은 꽤 지속되었다고 한다.
- 애 있으면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는 말, 괜히 존재하는 말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