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와 이데아
메타버스는 이데아가 될 것인가
메타버스는 21C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신조어다.
‘가상’, ‘초월’ 등을 뜻하는 영어의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인데 현실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의 가상세계를가리킨다.
가상현실로서 게임을 즐기거나 VR을 통한 가상세계에서의 실제같은 체험을 경험하는 것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개념이다. 실제 현실과 같은 사회 문화적 활동을 할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즉 게임세계의 오락성이나 실제같은 감각체험의 단계를 넘어 실제사회가 가상현실세계에 구현되어 인간이 가상세계에서 사회문화적 활동을 할수있는 단계로의 발전이다.
이 용어는 1992년 미국 SF작가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이 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 처음 등장했다고 하는데, 이 소설에서 메타버스는 아바타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가상의 세계를 가리킨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아바타라는 개념이다. '아바타'는 가상세계의 또 다른 자아를 설명하는 개념인데 폭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싸이월드의 '미니미'도 이 아바타의 재현이다. 다만 나의 명령대로 행동하고 움직일수 없다는 맹점이 있다. 그저 나 자신의 가상세계 재현, 그 자체였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이제 우리사회는 '아바타'로 접속되는 가상세계, 메타버스라는 개념을 기술발전에 따른 5G 상용화와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과 맞물려 그 개념이 급속도로 상용화하려하고 있다.
더구나 가상화폐의 등장으로 소장을 해야 가치가 발생되던 미술시장마저도 대체불가능한 토큰이란 개념의 NFT를 통해 미술작품 시장의 확대를 가늠하고 있다. 수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디지털화하여 가상세계로 이행시키려 하고있고 그런 전시가 기획되고 실행되고 있다. 신기술의 등장이 가져온 획기적인 인류문명의 발전이라는 시각으로 볼수 있지만, 비판적인 목소리도 있다. 세계적인 경매업체, 크리스티의 전 경매사인 찰스 알솝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구매한다는 문화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으며, 블록체인 전문가 데이비드 제라드 역시 NFT 판매자를 ‘사기꾼’이라 칭하며 “아무런 가치가 없으면서도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자산을 발명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필자는 이런 현상이 아직은 예술적 가치를 인정하기 어려운 과도기라고 본다.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것은 여러요인이 복합적으로 기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란 녀석이 필요한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와 이 메타버스는 얼마나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인데,
우리에겐 영화 <아바타>가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문화콘텐츠로 아바타와 메타버스를 설명하기에 적절한 콘텐츠다.
지구의 에너지고갈로 인해 풍요로운 자원이 매장된 행성 판도라로 향한 인간들은 '아바타' 프로그램을 통해 나비족의 세계에 침투한다. 침투란 표현을 한것은 인간의 목적이 나비족의 터전에 매장된 풍족한 자원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비족은 그들의 접근이 달갑지않았다. 이 과정은 백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을 내몰았던 역사와 닮아있다.
어쨌든 주인공 샘 워싱턴은 성공적으로 나비족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었는데, 지구인에게 나비족의 행성, 판도라는 일종의 메타버스인 것이다. 지구와 닮았지만 지구가 아닌 곳, 지구에서 상실된 자원, 자연환경에서 활동하기 월등한 신체조건, 동물과 자연의 교감이 가능한 정신까지.
그들에게 판도라는 환상 그 자체의 유토피아다. 물론 인간의 이기심으로 판도라를 파괴하려했고 주인공은 나비족의 편에 서서 그들의 지켜내려한다. 영화의 몰입을 위한 스토리텔링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겠다.
인간의 가상현실에 대한 욕망은 거슬러올라가면 플라톤의 이데아의 개념까지 갈수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누구나 다 아는 말이다. 플라톤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과 무생물은 이데아의 재현으로 보았다. 그렇기때문에 이데아의 재현인 우리의 세계를 재현하는 예술가들을 폄훼했고 추방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인간의 이상향으로서 이데아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실제에서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한 욕망의 실현이다.
메타버스는 실제의 것을 갖지못하는 인간들의 욕망을 채우기위해 존재한다. 소장하지못하는 예술작품을 가상의 세계에서나마 감상하고 가상의 화폐로 실제작품은 디지털이미지를 소비한다. 즉, 반대로 실제 원본은 오히려 더 가치가 상승할지도 모른다. 기술복제의 시대, 아우라의 몰락을 언급했던 발터 벤야민은 아마도 이런 가상세계로의 이행을 예견한 것이 아니었을까. 아우리가 몰락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세계로 이행되면서 그리고 그 안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향유할 수 있는 예술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이 등장했다. 그 결과가 NFT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에게 VIP로 받아들여지는 이들은 어떤 생각일지 궁금하다. 그들은 여전히 기득권이고, 예술시장에 관여해 그들의 아취를 고착하려할 것이다.
일례로 고 이건희가 수집한 미술품이 가진 가치가 집중되고, 그의 취향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갤러리가 어디에 위치할 것인지를 놓고 전국의 미술인들과 미술협회, 지역민들이 소란을 일으켰었다. 물론 고 이건희 삼성 전 회장이 벼슬을 한 고위공직자이거나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아취문화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희의 취향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도록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메타버스로 이행된 예술작품들과 사회문화 활동들은 대중의 어떤 욕망과 연계해 향유될 것이며, 어떤 식으로 전승될 것인가. 그리고 과연 이 메타버스는 플라톤의 이데아에 대한 역행이 될 것인가. 궁금하다.